이정은 "조정석 엄마 하기엔 너무 젊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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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44) 엄마 역할 하기엔 너무 젊죠? 하하."

배우 이정은(56)이 연기하면 아무리 작은 캐릭터에도 서사가 생긴다. 그래서 믿고 본다. 모든 이가 믿고 맡긴다. 충무로의 보석 같은 배우 이정은의 이야기다. 드라마든 영화든, 그의 등장만으로 인물의 삶이 깊어지고 이야기가 단단해진다. 이번에는 만화처럼 색다른 캐릭터다. 생동감 그 자체다.

이정은은 영화 '좀비딸'에서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핵인싸 할머니' 밤순 역을 맡았다. 24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그는 "사실 배우가 노역을 영상 매체에서 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건강한 코미디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할 때쯤 '좀비딸'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좀비딸'은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좀비가 된 딸 '수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 '정환'의 이야기로 글로벌 누적 조회수 5억뷰를 기록한 동명의 네이버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필감성 감독과는 '운수오진 날' 때 '좀비딸' 제안을 받았습니다. 감독이 P 감성이 있어서 장르를 잘 찍거든요. 당시엔 웹툰을 안 본 상태였는데 손녀를 살리는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제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노역이기 때문에 내가 아닌 외피를 많이 쓰게 되는데, 그런 걸 줄여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만화적 허용으로 조정석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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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은 대본 리딩 때까지만 해도 '뻔한 좀비물'이 나올까 경계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촬영에 들어가자 동화 같은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는 "경치도 너무 좋고 따뜻했다. 사람들이 보면 시원하겠다 싶었다. 찍으면서 이야기에 동화가 됐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필감성 감독에게 "무슨 요술을 부린거냐"고 묻기도 했다고.

'좀비딸'은 전형적인 좀비물의 문법을 벗어난다. 이정은은 "코로나 시기, 백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견디고 협력했던 우리 사회를 떠올렸다"며 "작품 속 가족과 친구들이 세대를 아우르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건강한 이야기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핵가족화와 각자도생이 당연시되는 지금, 모두가 시골로 모여 서로를 보살피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온다는 것.

"이젠 피로도가 너무 높잖아요. 뉴스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그래서 청정한 콘텐츠, 상쾌함을 주는 뭔가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요. 코로나 끝나고 사람들이 미술 전시회에서 바다, 초록 풍경을 찾고 그림 판매율도 높아진 것처럼요. 매체에서도 그런 방향이 더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려 부수는 액션물도 필요하죠. 다만, 웹툰 원작이든 클리셰든,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새로움을 줄 수 있어요. 단순해 보이는 구도도 충분히 신선하고 시원한 작품이 될 수 있어요. 지금은 그런 균형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가 연기한 밤순은 몹쓸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손녀딸 수아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예의도 질서도 밥 말아 먹은 좀비 손녀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 사랑의 효자손을 힘차게 휘두른다. 이 역할을 통해 이정은은 평소에 못 해봤던 와이어 액션부터 전매특허 댄스 신까지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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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잭과 콩나무'나 '걸리버 여행기', 마블 시리즈 같은 걸 보는 것을 좋아한다. 배우 입장에서 다른 경험을 하는 거다. 공중에 매달려서 연기하는 게 좀 웃기고, 언제 해보겠나 싶다. 이번에 해보니 체력이 중요하다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정은은 연습벌레다. 다섯 명의 사투리 선생님에게 대사 녹음을 받아 연습할 정도로. 그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댄스 장면에 대해 "'우리들의 블루스' 이후로는 제가 출연하는 작품에 춤추는 장면이 꼭 들어가는 것 같다. 감독들이 재밌게 봤나 보다"며 "흥만 가지고 장면을 만들 수 없어 굉장히 오랫동안 연습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교습 선생님이 안무를 외우는 실력이 높아졌다고 했지만, 여전히 '뽕필'이 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밤순’을 연기하며, '절제'를 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고 설명했다. "밤순도 할머니고, 어머니잖아요. 절제가 좀 필요했어요. 이 점이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표현되는 쪽이 있고, 그 몫을 다른 걸로 치환해서 보여줘야 하는 신들이 있었어요. 되게 불운한 어머니죠. 흘릴 눈물도 없는 마음이에요. 밤순이 가진 슬픔의 경지가 무얼까, 그걸 작품 들어가기 전에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들이 사육사지만 좀비가 된 딸아이 훈련도 정서적으로 접근하잖아요. 저는 지식은 없지만, 기강을 잡죠. 그게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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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의 연기에 대한 기대치는 항상 높다. 그는 "세상에 작품이 공개되면 책임감 때문에 숨 막힐 때도 있었다"며 "요즘은 원래처럼 돌아갈 순 없지만, 가벼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수많은 히트작 속에서 진심을 담은 연기로 사랑받아온 이정은은 최근 들어 조금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연기를 대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 사진작가처럼 많이 찍었어요. 이제 좋아하는 걸 집중해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요.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요. 쉽진 않겠지만 중압감을 버리려고요. 매번 대중에 대한 감사가 넘쳐흐르지만, 감사함 때문에 지금 같은 속도로는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랑에 보답하려고 많은 책임감을 갖는다기보다 즐겁게 하는 작업을 해야겠어요. 내가 행복해야 시청자도 행복할 것 같거든요. 그런 작업을 많이 하려고요."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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