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칠드런 오브 맨’(2006년)이란 영화가 있어요. 멕시코 출신 거장 알폰소 쿠아론의 작품이죠. 2027년 충격적으로 슬픈 뉴스가 세계에 타전되면서 영화는 시작해요. 현존 인류 중 가장 어린 인간인 ‘디에고’란 청년이 아이돌급 인기를 싸가지 없이 뽐내다가 흉기에 찔려 18세를 끝으로 사망한 거죠.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인류는 집단 불임이 된 지 오래. 근데 이게 웬일? 이민자인 흑인 여성 ‘키’가 기적의 임신을 하게 됐어요. 18년 만에 인류가 맞는 임신. 그녀는 영국 정부의 감시망을 벗어나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과학자 집단 ‘휴먼 프로젝트’가 보낸 구조 선박 ‘투모로우’호에 탑승하려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다는 얘기예요.
딱 봐도 아시겠죠? 그녀가 출산하는 아이는 예수를 상징해요. 가축들이 부산히 오가는 헛간 비슷한 곳에서 그녀가 아기를 출산하는 모습은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를 연상시켜요. 그녀가 “너무 많은 남자랑 자는 바람에 아기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고 농 섞인 진담을 건네는 대목도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를 반 바퀴 돌린 설정이고요. 당시만 해도 국제 분쟁, 환경오염, 국제적 이민자 혐오와 사회 갈등을 구원적 시선으로 바라본 걸작이란 평가를 받은 이 사색적인 작품이 20년 만에 저출산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 영화로 오해되는 기기묘묘한 현상만 봐도 저출산 위기를 피부로 느끼게 돼요.
[3] 저출산은 고령화 이슈로 이어지겠죠? 일찌감치 초고령화에 진입한 일본에선 차고 넘치는 상상력이 영화에 발현되었어요. ‘로스트 케어’(2024년)는 발언 수위가 꽤 높아요. 친절하고 헌신적으로 보였던 청년 간병인 ‘시바’가 자신이 간병한 노인 40여 명을 연쇄 살해한 사실이 수사기관에 의해 드러나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에서 시바가 “내가 한 일은 살인이 아니라 구원”이라고 강변하는 대목은 곱씹어볼 만해요. 치매에 걸리고 가족에게 외면당한 채 오직 죽음만 기다려온 노인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여온 그이니까요.‘플랜 75’(2024년)란 일본 영화는 국가가 노인의 자살을 제도적으로 권장하는 설정까지 나아가요. 요양시설에 엽총을 들고 난입한 청년이 노인들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해요. 청년은 이런 유언을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넘쳐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 노인들도 더는 사회에 폐 끼치기 싫을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 일본인은 국가를 위해 죽는 걸 긍지로 여겨왔다. 나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바란다.” 세대 갈등이 폭발 직전인 상황에서, 때마침 ‘플랜 75’란 정책이 의회를 통과해요. 75세 이상 노인의 안락사와 장례비를 지원하는 제도죠. 수년이 흐르고 일본 정부는 “플랜 75를 3년간 실시한 결과 1조 엔의 경제효과를 거뒀으며 10년 안에 ‘플랜 65’로 확대하겠다”며 자화자찬해요. 콜센터에선 안락사 신청을 받고, 신청 노인들에겐 상담사가 배치되며, 안락사한 노인들의 유품을 처리하는 유품 처리사란 신종 직업이 생기죠. 노인들은 정부가 지급한 지원금(100만 원)을 인생 마지막 용돈으로 쓴 뒤 사방에 커튼이 쳐진 1인 침상에 누워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가스를 흡입하고 죽어요. 주된 신청자는 돈 없고 외로운 홀몸노인들이지요.
[4] 아, 말도 안 되는 우울한 얘기라고요? 이런 공상이 현실화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영화 예술가들이 과학자들을 뛰어넘는 탁월한 상상력으로 미래를 예견했던 건 사실이에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란 영화로 인류를 위협하는 인공지능(AI)의 위험성을 알린 게 자그마치 57년 전이었으니까요.
기대해주세요. 다음 호에선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엽기적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신화적인 영화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보고 나면 족히 사흘은 찝찝할 걸요?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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