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최우선으로 원유를 공급하겠다.” 이란전쟁으로 세계 각국이 원유 조달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중동 산유국들이 한국에 특별 대우를 약속하고 있다.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달 초 서울에서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 주한대사들을 만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한국이 최우선 순위’라는 확답을 받았다. 산유국의 특별한 배려일까, 외교적 수사일까. 둘 다 아니다. ‘VVIP 고객을 잃을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세계 4위 원유 수입국인 한국은 수십 년간 매일 약 200만 배럴의 중동산 원유를 사들여왔다. 단 한 번의 수입 대금 연체도 없었다.
한국은 단순한 대량 구매자가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중간 생산 기지다. 중동에서 수입한 고유황 중질유를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정제 설비에서 휘발유, 나프타, 항공유 등으로 재가공해 세계에 공급한다. 에너지 공급망 내 존재감이 인공지능(AI) 시대 메모리 반도체 못지않다. 한국이 원유 조달에 차질을 빚자 미국 캘리포니아가 몸살을 앓을 정도다. 휘발유 가격은 폭등했고, 비행편은 급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항공유의 20%, 휘발유의 25%를 수입한다. 대부분 한국산이다. 항공유의 거의 전량을 수입하는 호주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의 항공유 수출 통제 소식을 호주 현지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다. 전쟁 전엔 잘 보이지 않던 한국 정유산업의 전략적 가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도했든 아니든 이번 전쟁은 중동 원유 가격을 밀어 올릴 게 분명하다. 공격받은 에너지 인프라 재건 비용, 위험해진 호르무즈해협 통과 비용이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산 셰일오일의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이 중동 의존도를 급격히 낮추기는 어렵겠지만, ‘관세 압박’이라는 무기까지 장착한 미국산 에너지의 점유율 확대는 시간문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결렬된 지난 12일 “빈 유조선이 석유를 채우러 미국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산유국들이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는 건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전쟁이 일깨운 진실은 또 있다. 세계는 여전히 석유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셰일 혁명에 성공한 미국은 더 이상 중동 원유가 필요치 않다. 하지만 세계 원유 생산량과 가격을 통제할 유인은 여전하다. ‘페트로 달러’로 대표되는 금융 패권을 수호하고, 무엇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탈탄소와 전기화로 에너지 패권전쟁의 구도를 바꾸려는 중국의 시도를 지연시키는 전략이다. 화석연료는 재생에너지 공급망의 일부다. ‘전기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은 아직도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다.
정부 안팎에서 이번 에너지 공급 위기를 계기로 탈탄소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새 목표를 발표했다. 탈탄소는 가야 할 방향이다. 문제는 속도다. 캘리포니아는 원래 에너지 자립도가 높은 주(州)였다. 그런데 급격한 친환경 규제로 지난 20년간 정유사 12곳이 문을 닫았다. 셰브런은 140년 넘게 지켜오던 캘리포니아 본사를 2024년 휴스턴으로 옮겼다. 호주도 판박이다. 20년 전 8개에 달하던 정유사가 모두 해외로 떠나고 2개만 남았다. 호주 정부가 뒤늦게 석유 생산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토록 냉혹한 공급망의 실체를 세계가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캘리포니아, 호주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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