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대통령·공공기관장의 '임기 불화'

5 hours ago 1

[이슈프리즘] 대통령·공공기관장의 '임기 불화'

어김없이 그 ‘계절’이 또 돌아왔다. ‘공수(攻守)’만 달라질 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반복된다. 새 정부 출범 초기 공공기관장 인사를 놓고 불거지는 정치권의 충돌 얘기다. 이재명 정부와 윤석열 정권에서 임명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불편한 동거’는 기싸움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현 정부 들어 이 위원장의 발언이 잇달아 정부·여당의 심기를 건드리자 결국 이재명 대통령은 다음주 열리는 국무회의부터 이 위원장의 배석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위원장 사퇴까지 압박하고 나섰다.

이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은 시작에 불과하다. 내각 인선이 마무리되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겨냥한 여당의 퇴출 공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권이 교체됐는데도 전임 정부에서 선임된 기관장들이 법률상의 임기 보장을 이유로 버티는 경우는 역대 정부에서 되풀이됐다. 윤석열 정부 역시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들과 내내 불편한 동거를 해야 했다. 자진 사퇴를 거부하고 3년 임기를 다한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거의 다 채운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지만 전체 331개 공공기관에서 공석인 19곳을 제외한 기관장 312명 중 221명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다. 올해 안에 임기가 끝나는 기관장은 38명에 불과하다.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공공기관장은 대부분 2~3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이 때문에 정권 말이 되면 정권과 가까운 인사를 공공기관장으로 내려보내는 ‘알박기 인사’가 강행되고, 새 정부 출범 후 불편한 동거와 사퇴 압박이라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역할은 정부와 발맞춰 국정 목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새 정부의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거나 때론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새 정부가 국정 철학과 청사진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장 인사를 놓고 되풀이되는 충돌을 끝내려면 결국엔 공공기관운영법을 바꿔야 한다. 대통령 임기와 기관장의 임기를 같게 하는 방향이 최선이다. 여기엔 국민적인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법을 개정해도 여야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다. 그동안 5~10년마다 정권이 교체된 점을 감안할 때 언제든 ‘공수’가 뒤바뀔 수 있어서다. 다만 현 기관장 중 큰 실책이나 문제가 없는 인사의 경우 임기를 지켜주고, 실제 법 적용도 다음 정권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야당의 반발을 줄일 수 있고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된다.

대통령 임명직을 정리한 ‘한국판 플럼북’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플럼북은 미국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연방정부 직위를 정리한 공식 문서로, 1952년 처음 발간된 이후 매 대선 직후 공개된다. 각 직위의 자격 요건과 임명 절차를 명시해 자의적인 인사나 낙하산 논란을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제도 도입 논의가 이어졌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번번이 무산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장 자리를 놓고 볼썽사나운 다툼을 벌이는 행태는 이젠 끝내야 한다. 때마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가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도 지난달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공공기관장과 임원의 임기를 만료한 것으로 간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와 여당이 야당과의 합의를 통해 이를 법제화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길 바란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