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제1호 공약으로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내세웠다. 미국, 중국에 이어 AI 3대 강국 달성을 목표로 했다. 100조원 투자, 인재양성, 글로벌 주도권 확보, 규제개선, 지역별 거점 대학, 병역특례, 클러스터 조성과 '국민 모두의 AI'를 위한 활용촉진 등 세부 전략을 제시했다. 잘 할 수 있을까. 무엇부터 해야 할까.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승리를 위해선 항공권 장악이 최우선이었다. 항공 교전에 필수인 전투기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전투기를 심층 연구했다. 총탄자국은 전투기의 몸통, 날개, 꼬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러분이 담당자였다면 어디를 보강했을까. 총탄자국이 가득한 몸통, 날개, 꼬리가 적의 주요 공격대상이 되었으니 그 부분을 보강하면 더욱 강력한 전투기가 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들의 연구는 살아 돌아온 전투기를 대상으로 했다. 복귀하지 못한 전투기가 왜 격추됐는지 알지 못했다. 몸통, 날개, 꼬리에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전투기는 그 피해에도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조종석과 엔진에 총격을 당한 전투기는 돌아올 수 없었다. 몸통, 날개, 꼬리가 아니라 조종석, 엔진을 보강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살아남은 데이터에만 집중해 잘못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생존자 편향의 오류'다.

미국, 중국의 빅테크 기업은 AI반도체, 생성형 AI와 관련 기술에서 우리에 앞선다. 우리도 그들의 기술적 진전을 그대로 따르고 빠르게 배워 AI 3대 강국에 들어가자고 한다. 그들의 목표와 그들의 수단을 베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AI 예산과 투자를 대폭 늘리고 창업을 지원하며 인재양성과 조기교육에 집중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중국이 이룩한 성공의 현실과 결과만 보고 허겁지겁 추격하면 생존자 편향의 오류에 빠질 위험은 없을까.
미국, 중국은 우리와 환경이 다르다. 미국은 민간 중심의 산업과 시장이 일찍 발달했고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해온 만큼 적극적 선행 투자를 통해 AI와 시장을 만들었다. 인재는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몰리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클러스터도 마찬가지고 글로벌 주도권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는 AI 성장 주도권을 민간에 주면서 거시 차원에서 정책으로 조정할 뿐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응해 패권을 달성하기 위해 공산당을 중심으로 AI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을 모방하고 추격하다가 우리 고유의 장점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그나마 가졌던 장점마저 놓치고 잃을 위험은 없을까. 여기 참고할 만한 모델이 있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어느 날 강화도에서 도굴돼 일본인이 갖고 있던 문화재 1점을 샀다. 그 후 가치를 알아본 일본은 이 문화재를 얻기 위해 높은 값을 부르고 협박까지 했지만 팔지 않았다.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 그것이다. 12세기 고려 도공들이 고운 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구름, 학 무늬를 넣어야 할 부분을 파내고 다른 색깔의 흙을 넣어 메운 뒤에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구워 만들었다. 69마리의 고고한 학과 아름다운 구름 무늬는 전문 화가까지 나섰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선 강진에서 개경으로 향하던 침몰선 잔해에서도 청자가 대량 발굴됐다. 고려를 다녀간 중국 북송의 서긍은 '선화봉사 고려도경'에서 일관되게 고려를 비판했지만 고려청자에 대해서만 중국을 넘어선다고 평가했다. 남송의 태평노인도 책 '수중금'에서 고려청자의 비취색은 천하제일이라고 했다.
고려청자를 만들기 위해 중국의 흙을 수입하지 않았다. 중국기술자를 고용하지도 않았다. 중국식 가마보다 크기를 줄이고 벽돌이 아닌 흙으로 가마를 만들었다. 중국에 역수출하는 쾌거를 이뤘고 중국인의 필수품이 됐다. 고려청자에서 AI강국의 단서를 찾으면 어떨까.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