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미숙보다 능숙, 능숙보다 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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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주민행복센터를 동사무소라고 했다. 그곳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 하나가 유머로 인터넷 공간에서 소비된다. 첫 출근 하여 민원 창구에 앉은 신입 동사무소 직원 A는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아직 일머리가 없는 탓이다.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속으로 주문을 외워보지만 끝내 민원인 B의 그림자가 짠 하고 그를 엄습한다. "사망 신고하러 왔습니다." 당황한 A의 반응이 '가관'이다. "직접 오셨습니까?" 황천길로 떠난 사람이 제 죽음을 알리러 오긴 어렵잖은가. 더 놀라운 것은 B의 '화답'이다. "앗, 본인이 직접 신고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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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하는 노경은

(도쿄=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2회말 한국 노경은이 역투하고 있다. 2026.3.9 hwayoung7@yna.co.kr

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여 서투름. 사전이 정의하는 미숙(未熟)이다. A도 미숙하고 B도 미숙하다. 둘 다 처음 겪어서다. 그럴 수 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사망 신고를 해본 일이 있다면 이런 티키타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막상 겪어보면 별일 아닌 예도 많고, 또 별일이더라도 공들여 배우고 익히면 일머리가 생기고 미립이 트이기 마련이다. 좋은 공부와 경험이 미립의 원천이라 하겠다. 미립은 경험을 통해 얻은 묘한 이치나 요령이니까.

미숙이 좋은 공부와 경험을 요구하는 말이라면 능숙(能熟)은 오만과 교만을 경계해야 하는 말이다. 사람이 어떤 일에 막히거나 서투른 데가 없이 익숙해 지면 까불기 일쑤다. 가볍고 조심성 없이 함부로 행동하거나 건방지고 주제넘게 군다는 뜻이다. 운전도 얼마간 지나, 손에 익을 때가 교통사고를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라고 하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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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경은 '좋았어!'

(도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4차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2회말 2사 한국 노경은이 호주 퍼킨스의 타구를 그대로 잡아 라인드라이브 아웃 처리하며 환호하고 있다. 2026.3.9 yatoya@yna.co.kr

그래서 늘 우러르는 건 '안정된 능숙'이라 할 원숙(圓熟)이다. 원숙은 '기량 따위가 충분히 성숙되어 무르익다', '사람이나 그 성품, 인격이 원만하고 품위가 있다'라는 뜻이다. 원숙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지만 열정과 책임감까지 보태면 상상을 뛰어넘는 '일을 내곤 한다'. 최근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호주전에서 2이닝 무실점 역투한 1984년생 투수 노경은이 바로 그런 예다. "노경은 죽지 않는다. 다만 존경받을 뿐이다." 이쯤 되면 댓글도 WBC급이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연합뉴스 기사, [WBC] 위기에서 빛난 42세 노장 역투…노경은 "왜 뽑혔나 증명해 기뻐" (송고 2026-03-09 23:55) - https://www.yna.co.kr/amp/view/AKR20260309180000007

2. 표준국어대사전

3.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3월12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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