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사과’ 日 고노 전 장관 별세[횡설수설/장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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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세상을 떠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하원) 의장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함께 ‘일본의 양심’으로 불렸던 정치인이다. 그는 일본에 가장 중요한 나라로 한국과 중국을 꼽으면서 “과거사를 정확히 알고 반성해야 이웃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가 관방장관이던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는 그런 신념의 산물이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피해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현안이 된 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동안 “민간업자가 한 일”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와 상의해 국내외 자료를 취합했고,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을 들었다. 생생하고 참혹한 피해 진술을 확인한 그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군의 관여를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

▷고노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1995년),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으로 이어지며 한일 간 화해와 협력의 흐름을 궤도에 올렸다. 하지만 우익 세력은 이 담화가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며 끊임없이 공격했다. 우익단체 회원이 흉기를 소지한 채 그의 집 앞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 “정부 입장을 대표로 발표했을 뿐”이라며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고노 전 의장은 그렇게 하는 대신 기회가 날 때마다 언론에 나와 담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정계 은퇴 후에도 자민당의 온건파 원로로서 야스쿠니신사 참배, 평화헌법 개정 같은 우경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자민당 중진 의원의 망언이 나왔을 때는 “정치가로서 실격이다. 공부 좀 하라”며 직접 나서 꾸짖었다. 고노 담화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4년 “담화 작성 경위를 검증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위안부 동원에는 분명히 강제성이 있었다”고 맞섰다. 결국 아베 정부는 고노 담화를 폐기하지 못했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정계 거물들과도 가까웠는데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다. 퇴임을 앞둔 김 전 대통령을 위로하기 위해 수술 직후 의사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서울행 비행기를 탔을 정도였다.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친구를 잃었다”며 애통해했다.

▷그의 이름 ‘요헤이(洋平)’는 ‘평화로운 태평양’을 기원하면서 부친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고노 전 의장은 그 이름대로 일본이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주변국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으려 했다. ‘강한 일본’을 내세우는 다카이치 내각이 방위비 증액과 개헌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그의 별세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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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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