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환자만 처방 가능합니다. 물량이 부족해 당분간 구입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20일 서울 종로의 한 병원. 이날 한국에서 판매가 시작된 일라이릴리의 비만약 ‘마운자로’를 처방받기 위해 몰린 환자로 북새통이었다. 예약 없이 처방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접수대에 있는 직원에게 이런 안내를 받고 돌아갔다. 이 병원 문앞엔 ‘예약 환자만 구입 가능’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일부 의료기관엔 마운자로를 처방받기 위해 ‘오픈런’에 나선 환자가 몰리면서 대기 시간만 1시간가량 이어지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엔 ‘마운자로 예매 없이 구매하는 방법’ 등을 담은 게시글이 잇따라 공유됐다. 종로3가에 ‘성지’로 불리는 병원과 약국 등을 찾으면 예약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운자로 2.5㎎ 용량이 29만원이라는 구체적인 가격 정보도 담겨 있었다. 이날 마운자로 구매를 위해 동네의원을 찾은 환자 A씨는 “인터넷에서 ‘비만 치료 성지’로 불리는 종로3가 인근 병원을 파악해 초기 투여 용량을 겨우 구매했다”고 했다.
마운자로는 상용화한 비만약 중 체중 감량 효과가 가장 크다.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과 GIP 수용체에 동시 작용하는 이중작용제다. 마운자로의 허가용 임상시험 72주 차 체중 감량률은 22.5%였다. GLP-1 단일 작용제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가 68주 차 14.9%, 다른 비만약 ‘삭센다’가 56주 차 7.5%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다.
마운자로는 초기 투여하는 저용량 두 가지 제품인 2.5㎎, 5㎎ 제품만 먼저 출시됐다. 출고가는 한 달분이 각각 27만8000원, 36만9000원이었다. 다른 고용량 제품은 50만원대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량 마운자로는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아 유통이 시작되면 가격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위고비는 지난 14일부터 한 달분 기준으로 37만2000원이던 국내 공급가격을 용량에 따라 13~42% 인하했다. 초기 한 달 투여분인 0.25㎎은 21만6000원, 0.5㎎은 22만7000원, 1.0㎎은 24만9000원, 1.7㎎은 32만4000원으로 정해졌다. 마운자로 초기 투여분보다 20% 출고가를 낮추면서 가격 경쟁에 나섰다.
의료 현장에선 2.5㎎ 30만~35만원, 5㎎ 40만~45만원 정도에 판매됐다. 위고비는 0.25㎎ 저용량이 22만~28만원, 최고 용량인 2.4㎎은 39만~42만원 정도에 판매됐다. 지난해 10월 국내 출시된 위고비는 시장 점유율을 73%까지 확대했다. 서울 종로구 등 환자가 몰리는 ‘성지 약국’에선 이미 위고비 판매 가격이 25만원까지 내려갔다. 위고비 국내 총판을 맡는 쥴릭파마 측에서 지난 12일부터 기존에 고가로 공급한 약에 대한 환급 등을 시작하면서다. 다만 이 과정에서 환급 신청 기간을 사흘로 공지해 약국 현장에선 극심한 혼선을 겪었다.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통상 약의 공급가가 바뀌면 한 달 이상 기간을 두고 기존 물량에 대한 반품과 재구매 절차 등을 거친다”며 “사흘 안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운자로와의 경쟁에 신경 쓰느라 다른 데 집중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