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초대석]“사전투표제, 국민 불신 불러온다면 국회서 근본적 고민 해봐야”

3 weeks ago 9

‘부정선거 음모론’ 차단 나선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이번부터 투표소별 사전투표자 수… 시간대별 추가로 온라인 공개키로
동아일보 제안한 정책 제언, 예산-기술-입법 고려해 검토
자녀 경력 채용 이해 안되는 일,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할 것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8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짙은 회색 넥타이를 맨 노 위원장은 “제가 선관위원장으로 와보니까 제일 불편한 게 넥타이 고르기”라며 “빨간색, 파란색 다 맬 수 없고…(웃음)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8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짙은 회색 넥타이를 맨 노 위원장은 “제가 선관위원장으로 와보니까 제일 불편한 게 넥타이 고르기”라며 “빨간색, 파란색 다 맬 수 없고…(웃음)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18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집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춧잎 투표지’ ‘소쿠리 투표’ 등 부실 관리에 대해선 참 죄송하게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선거인 또는 투개표사무원 등의 실수나 착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이 선거 조작 등 부정선거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에도 중앙선관위 청사 앞에는 “범죄조직 선관위는 해체하라” 등을 외치는 부정선거론자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노 위원장은 최근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심리학 및 행동경제학부 교수가 쓴 ‘미스빌리프(misbelief)’를 읽고 있다고 했다. 이성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가짜뉴스 등 비이성적인 것들을 믿게 되는 이유에 대해 쓴 책이다. 노 위원장은 “인간의 기본적인 뇌 구조나 생각, 심리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며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당일 선거연수원에 머무르던 중국 간첩단 해커들이 체포돼 미군 오키나와 기지로 압송됐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그게 현대사회에서 가능한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특히 언론출판의 자유를 유튜브 등 디지털 매체에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하루가 다르게 역정보나 허위 정보가 나오는 상황이라면 진실이 드러날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직 대법관이자 선관위 수장으로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유튜브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고민이 묻어 있는 듯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정선거론자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근거 없이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저지를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동안 그런 부분들에 대해 정치권의 말씀도 많이 듣고 나름대로 설명을 했는데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지만 우리 민주 사회의 가장 근본이 되는 선거 투표 절차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민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희는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계속 최선을 다하겠다. 가장 구체적인 제도나 절차 관리부터 시작해 큰 흐름을 통해서 계속 해법을 찾고 이야기를 듣고 고쳐 나가도록 하겠다.”

―위원장께서 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정선거가 발생할 수 없다고 단언했는데, 부정선거 의혹이 커진 데는 배춧잎 투표지나 소쿠리 투표 등 선관위의 일부 부실 관리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배춧잎 투표지’ ‘소쿠리 투표’ 등 부실 관리에 대해선 참 죄송하게 생각하고, 그런 면에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쿠리 투표는 2022년 대선 사전투표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오미클론 확산 과정에서 우리가 좀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다. 그 후에 전임 위원장이 물러났다. 직후 내부 조사도 했고 제가 부임하고 난 뒤 특별 감찰도 했다. 공직선거에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협조 받은 약 30만 명의 외부 인력이 개표사무원으로 참여한다. 그만큼 그 과정에서 선거인 또는 투개표사무원 등의 실수나 착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이 선거 조작 등 부정선거의 근거가 될 순 없다. 지금까지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은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선거 절차와 이에 대한 이해 부족, 선거인의 다양한 투표 행태, 투·개표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실수 등이 정치 양극화, 일부 유튜브 채널의 과도한 사익 추구, 확증편향 심화 등 사회현상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유튜브를 통해 근거 없는 주장들이 확산되고 있다. “정말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해킹을 해가지고 투표함을 바꿔치기 한다는 게 우리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그(부정선거) 과정에서 누구 한 분이라도 양심선언을 하면 영웅이 될 수 있는데 없지 않나. 지난번에 총선 할 때부터 도입한 수검표라든지, 폐쇄회로(CC)TV 24시간 공개라든지, 최선을 다해 제도적인 보완을 하고 이번 선거에서도 국민적 관심이 높은 투·개표 절차의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릴 것이다.”

―선관위가 ‘공정선거참관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정치 관련 학회가 주도해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된 공정선거참관단이 사전투표, 선거일투표, 개표 등 주요 투·개표 절차 사무 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것이다. 참관단 활동은 언론사 동행 취재, 선관위 홈페이지 및 유튜브 게시 등으로 국민에게도 선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선거 종료 후 참관단 운영 결과를 포함한 외부 평가를 통해 선거 관리 과정의 투명성도 확보하겠다. 학회가 자율적으로 교수님과 학생 등 참관단을 구성하고 우리는 주어진 예산에서 최대한 반영할 예정이다. 보여드릴 수 있는 건 다 보여드려서 국민들이 이제 의혹을 좀 제대로 한번 풀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선거에서 또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사전투표자 수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어 사전투표소별 투표자 수를 공개할 예정이다. 중앙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의 선거통계 시스템은 1시간 단위(오전 7시∼오후 6시)로 시·도별, 구·시·군별 사전투표율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으나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사전투표소별 관내·관외 사전투표자 수를 시간대별로 추가로 공개하는 것이다. 선관위가 제공하는 사전투표소의 시간대별 투표자 수와 참관인이 직접 헤아린 투표자 수를 시각마다 비교할 수 있어 사전투표자 수가 부풀려지지 않았음이 증명될 것이다.”

―본보가 〈6·3대선, 부정선거 음모론 끝내자〉 시리즈를 통해 정당과 보안 전문가, 학계 등이 참여하는 ‘민관정 검증단’ 구성, 전 투·개표 과정 녹화 등을 제안했다.

“동아일보가 구체적으로 제안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민관정 검증단’은 앞서 언급한 공정선거참관단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 실시하는 만큼 다양한 인사가 참여해 투·개표 과정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투표함 온라인 24시간 공개는 우리도 고민을 했었는데, 안정적인 중계시스템이 담보돼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페이크 영상 기술이 뛰어나니까 의혹만 더 커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투·개표 사무원 인건비 증액에 대한 요구 등 예산 문제가 있다. 사전투표 신고제는 입법 정책적 결정 사항으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정치권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투·개표 과정 녹화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면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하겠으며 장기 과제로도 잘 검토하겠다.”

―사전투표제 폐지 등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14년도에 소위 부재자투표가 폐지되면서 여야 합의로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저희는 그야말로 법에 정해진 대로 선거 관리를 하는 입장이다. 국민의 불신을 자꾸 불러일으킬 정도의 제도 같으면 국회에서 한번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선관위 경력채용 비리 의혹은 독립기관으로 외부의 감시를 덜 받아서 벌어진 일 아닌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맞다. 변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1995년 울진군 선관위원장을 할 때 보니 당시 선관위는 비인기 부처여서 다른 행정부 공무원들이 한 직급 올려 선관위에 9급이 8급으로 오고 7급이 6급으로 오고 이렇게 시작이 됐다. 가령 전남 해남에서 보궐선거를 해야 되는데, 마침 직원이 한 명 빠진 상황이라고 하면 누가 해남에 오겠나. 그러다 보니 이게 우선 급하게 지인한테 ‘좀 와달라’고 한 측면이 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녀를 위해 규정을 바꾸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제 그런 ‘비다수 경력채용’은 폐지했다.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규정도 정비하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도록 철저히 하겠다.”

―일각에선 선관위 구성과 관련해 ‘법관의 겸직 및 비상근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번에 전임 사무총장이 자녀 경력 채용 논란 때문에 물러나면서 후임 총장을 뽑아야 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판사들은 자기가 판결 내린 재판에 대해 정치적인 편향성이 있다는 식으로 폄훼 받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나름대로 대외적으로도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교수님들도 중도에 가까운 분이 많지만 명망이 높은 분일수록 공천심사위원 등 특정 정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분들이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분들은 모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2022년 5월부터 3년가량 중앙선관위원장직을 맡았는데 소회가 궁금하다.

“제가 선관위원장으로 와보니까 제일 불편한 게 넥타이 고르기다. 빨간색, 파란색 다 맬 수 없고…(웃음),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저는 평생 재판을 하다 보니까 정무적 판단이나 홍보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선거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핵심 제도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 여러분께서도 투표에 적극 참여해 주시고 정책과 공약 그리고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꼼꼼히 따져 희망과 통합으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적임자를 뽑아 주시길 당부드린다. 정당·후보자 및 국민 모두가 선거 결과에 승복해 화합의 대한민국이 되기를 희망한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63)
△한양대 법학과
△사법연수원 제16기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서울북부지법 법원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현 대법관·중앙선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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