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며칠 전 한국의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사실 외국인 거주자는 대선 투표권이 없다. 그나마 나같이 영주권을 획득한 이들은 획득 후 3년이 지나면 지방선거에서만 투표권이 주어진다. 대선에서 참정권이 없다고 해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이 대선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든 네덜란드든 영국이든 이민은 요즘 여러 나라에서 중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기도 하거니와, 한국에 있는 외국인 거주자의 삶이 대선 후보의 공약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대선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판단을 하기엔 너무 이르고, 대선 결과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난 6개월 동안 혼란스러웠던 한국이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에 살면서 이번 대선이 내게는 여섯 번째 대선이었는데, 한국의 선거문화가 영국과 많이 달라 여전히 생소한 느낌이다.
한국과 영국의 큰 차이로는 우선 당의 상징색을 꼽을 수 있다. 영국에서의 진보와 보수당 색깔은 한국과 정반대다. 영국은 좌파 성향의 노동당이 빨간색이고, 우파 성향의 보수당이 파란색이다. 한국에서는 파란색 더불어민주당이 좌파, 빨간색 국민의힘이 우파로 나뉜다. 그런데 민주당에서 나오는 정책들이 어떨 때 보면 영국 보수당 정책들보다도 더 보수적일 때도 많아서 한국의 민주당을 좌파로 부르는 게 맞는지 언뜻 혼란스럽기도 하다.영국에서는 선거철이면 온 동네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물들고 군데군데 노란색이나 초록색을 볼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은 지지하는 정당의 현수막을 집 앞마당이나 창문에 스스럼 없이 붙인다. 반면 한국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이런 선거운동이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단지 이웃이나 택배기사 말고는 내 선거운동을 봐 줄 사람이 없을테니 말이다. 동네에서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후보의 사진이나 현수막을 내건 것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이런 행동이 오히려 비난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몇몇 연예인은 대선 기간 빨간색 또는 파란색 옷을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논란에 휩싸여 관련 게시물을 삭제해야 했다. 또 손가락 포즈가 특정 정당을 연상케 할 수 있다고 아이돌 사이에 ‘손가락 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는 연예인들이 공개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선거운동까지 하는 영국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선거운동 방식도 많이 다르다. 선거철마다 외국인 거주자들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는 소음이다. 유세 차량이 아침저녁으로 동네를 돌며 음악을 틀고, 유세원들은 구호를 외치기 때문이다. 교차로 옆에 거주하며 재택근무를 하는 한 친구는 “두 정당 트럭이 경쟁적으로 음악을 틀어대서 일에 집중할 수 없다”며 “비무장지대에서 남북이 서로 방송으로 체제 선전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토로했다. 반면 영국에서는 후보자와 자원봉사자들이 가정집을 일일이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한다. 내 동창도 지난 선거에 매일 밤 여러 가정을 방문하면서 살이 꽤 빠졌다고 내게 자랑을 한 적이 있다. 대선 날 개표방송이 시작되자 내가 가입한 영국 채팅방에는 재미있고 개성 있는 한국 개표방송의 캡처 이미지가 올라왔다. 지역 특산물을 미니어처 요리로 표현하며 지역별 개표 현황을 소개하기도 하고, 오징어 게임과 흡사한 내용의 영상들을 활용해 득표율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국 개표 방송은 한국에 비하면 확실히 ‘노잼’(재미없음)이다.한국에 거주하는 영국인들도 정치 성향이 다양한데, 타국에서 ‘아웃사이더’로서 여러 해를 살다 보니 자국민에 비해 더 진보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치적 이유를 떠나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우스갯소리로 영국 친구들과 토론을 벌였는데, 대다수가 이번 대선 후보들 중에 이름이 ‘영국’인 후보자를 꼽았다. 이름만 봐도 신뢰가 간다는 이유였다. 이와는 거리가 먼 후보가 새 대통령이 됐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200만 이민자들에 대한 좋은 정책을 펼치시길 바라본다. 무엇보다 한국의 지난 몇 년간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얼마만큼 수습하고 K파워의 세계화에 어떤 전환점을 만들어 갈지 앞으로의 5년을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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