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 헌재에 '중국식 이름'?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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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층에 헌재 탄핵재판 TF 중국인 암약 음모론 확산

한국인 성씨 中문화 영향…조선후기 천민들 족보매매로 姓 보급

한국사 전한길 "중국식 이름에 윤대통령 심판 맡겨"…근거 있나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태스크포스(TF)에 중국이 개입돼 있다는 음모론이 보수층에서 확산하고 있다. TF에 속한 헌법연구관 10여명 중에 중국 국적자와 화교로 의심되는 성(姓) 씨가 많다는 걸 의혹의 근거라고 내세운다. 일단, 한국은 국가안보 분야를 제외하고 외국인 및 복수 국적자가 공무원으로 활동하는 데 사실상 제약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 운영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초대 장관에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가 내정되기도 했었다. 다만 중국은 예외다. 중국은 자국민의 이중국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 대구에 간 전한길

대구에 간 전한길

(대구=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8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주최 국가비상기도회에서 발언 전 두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25.2.8
psik@yna.co.kr

▶ 법을 떠나 한국의 족보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중국인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헛소리라고 일축할 것이다. 한국 성씨의 절대 다수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성이 한 글자인 단성(單姓)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중국에선 이(李) 왕(王) 장(張) 유(劉) 진(陳)이 각각 5대 성을 이루고 있다. 중국식 이름이 문제가 된다면 이씨도 의심받아야 하지 않겠나.

▶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김씨든 이씨든 본디 절대 다수의 우리 민족에게 성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신라 진흥왕(재위 540년~576년)이 세운 4개의 순수비(巡狩碑) 가운데 북한산 비봉에 있던 비석을 보면 6세기까지도 성씨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 후 지역 호족들에게 성씨와 본관을 지어준 걸 계기로 지배계급에 족보라는 게 생겼고,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천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들이거나 그들이 모시던 양반의 성을 참칭하면서 성씨가 민중에 보급됐다.

전 국민이 비로소 성씨를 갖게 된 것은 일제가 1909년 호적법을 시행한 데서 비롯됐다. 옛날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가문이 '진짜 양반'으로 인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귀화 가문의 성으로는 중국 남송이 멸망하자 고려에 귀화한 나주 나(羅) 씨와 당나라 때 신라로 건너온 노(盧)씨가 대표적이다.

이미지 확대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 비봉에 세운 순수비의 복제물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 비봉에 세운 순수비의 복제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 탄핵반대 집회에서 활동하는 전한길 씨가 헌재 TF에 "중국식 이름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통령 심판을 맡긴다는 게 말이 되냐"고 주장하고 나서 중국 개입설에 기름을 끼얹었다. 전 씨가 한국사 일타강사인 데다 공무원 시험 전문가라 누구보다 공직 자격 법규와 족보의 유래에 밝은 사람일 텐데, 어떤 근거로 그런 의혹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 한민족의 혈통을 문제삼는 것이라면 헤아리기 어려운 귀화 성씨도 배제돼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국적 시비에 걸리지 않을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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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2월25일 06시3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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