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은]‘찐미’ 이재명 외교안보팀의 달라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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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부국장

이정은 부국장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반미(反美)주의자’ 질문을 받았을 때 내놓은 답변은 핵심을 비껴 간 부분이 있다고 본다. 하버드대를 다녔고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딴 것이 곧바로 반박 논거가 되지는 않는다. 한미동맹을 폄훼하거나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반복했던 인사 중에 미국에서 공부했거나 자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사례도 적잖다. 김 후보자가 과거 경력을 설명하는 대신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은 중요하다’고 힘을 싣는 발언을 했으면 어땠을까.

동맹파에 힘 실은 국가안보실 인선

반미와 친미를 나누는 과거의 단순한 이분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거나 관저를 향해 짱돌을 던지지 않는다. 강대국을 향해 치기 어린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서로 주고받을 것을 가진 중견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외교적 역량이 그만큼 올라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들도 “반미 여론을 갖고 장사할 때는 지났다”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한미,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외교안보 사령탑에 동맹파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임명한 데 이어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를 지낸 ‘워싱턴 스쿨’ 외교관을 국가안보실 2차장에 앉힌 것에서도 일관된 방향성이 확인된다. 후속 인선이 지연되면서 20여 년 전 이른바 ‘자주파 대 동맹파’ 충돌의 기억이 소환되던 타이밍에 스멀스멀 올라오던 우려를 일단락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위 실장을 ‘찐미(진짜 미국)’로 평가하며 “한미 관계를 잘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에 대해 “DJ(김대중 전 대통령)보다도 찐미”라고도 했다. 다만 박 의원이 이 자리에서 언급한 자주파 6인회의 영향력 또한 아직도 건재하다. 6인회 멤버인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캠프에서 실용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던 위 실장과 충돌했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작성하면서 이 후보자가 위 실장을 패싱했다는 논란이 벌어지는 등 강한 견제가 지속됐다. 캠프에서 공약을 놓고 벌어졌던 양측 갈등이 실제 국가 정책을 두고 표면화한다면 재앙이다.

달라진 美 상대하는 외교 집중할 때

‘찐미’ 외교안보팀이라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상대하는 일은 점점 험난해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5개월 만에 전국적 비판 시위에 직면했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진다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의회 과반을 놓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중재가 난항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란 전쟁까지 터졌다. 시한이 임박한 주요국들과의 관세 협상 또한 기대했던 속도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조해질수록 대외정책은 더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상대로 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주한미군 재배치, 북-미 대화 재개 등을 놓고 무리수를 두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도 숙제이지만 시급성과 난이도에 있어선 달라진 미국을 상대하는 게 상위에 놓여 있다. 더구나 대중, 대러 외교는 모두 미국과 교차방정식으로 엮여 있는 게 한반도 외교 판의 현실이다.

이 대통령은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지금부터는 첩첩이 쌓인 외교안보 과제들을 풀어내는 일에 정신없이 속도를 내야 한다. 불안하게 흔들릴 조짐을 보이는 한미동맹을 다잡고 이를 바탕으로 이재명표 실용외교가 뭔지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제2의 자주파 대 동맹파’ 갈등으로 초기 동력을 놓칠 여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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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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