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일관성 다 불안정했던 韓 외교
불행히도 우리 외교는 방향과 일관성 모두 불안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진핑, 푸틴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오른 것은 논쟁적이었다. 12시 방향에 가까웠다. 오래지 않아 한중 관계는 사드 배치로 악화 일로였다. 초장부터 우리 안보 문제라고 당당히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중국에 ‘뒤통수 맞았다’는 비난의 빌미를 줬다. 시침은 크게 흔들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 방중 때 중국에 저자세였다. 사드 갈등을 봉합했지만 미국에 친중 정권이라는 의심을 남겼다. 시침은 다시 12시를 바라봤다. 임기 말 한미 정상회담 성명에 대만, 남중국해 문제가 들어갔다. 중국 견제 동참으로 해석된 이 변화에 중국은 “불장난하지 말라”고 발끈했다. 시침은 다시 크게 흔들렸다.윤석열 전 대통령은 시침을 거의 2시까지 돌렸다. 미국의 중국 포위에 적극 동참했다. 그의 대만 문제 발언에 중국은 “불장난하면 반드시 타 죽는다”며 거칠게 반발했다. 자유 진영의 든든한 일원이 돼야 중국과 당당히 상대할 수 있다는 논리였는데, 정작 중국을 대화 상대로 설득할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이 10년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시기였다. 그 한복판에서 외교 좌표를 설정해야 할 때였지만 정권마다 한쪽으로 경도되거나 오락가락하며 허약한 실력을 드러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의심이거나 압박이었고, 중국의 반발이거나 보복이었다. 미중 사이에 끼인 우리의 처지는 더욱 불안해졌다.
우리도 ‘외교의 마지노선’을 갖자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일본 중국 순으로 정상 통화를 했다. 한미일 협력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중국 때리기에 앞장서지는 않겠다는 방향이 엿보인다. 그런 이 대통령도 지난날 언행을 되짚어 보면 외교 시침이 크게 요동했다. ‘셰셰’ 발언, 한미일 협력 및 한일 관계에 대한 거친 비판은 그 지향이 12시를 향하는 것으로 비쳤다. 대선 과정에서 변침한 것은 그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일 테지만 일관된 원칙이 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동북아에서 각기 상대의 영향력을 밀어내려는 미중 대립의 강한 척력(斥力)은 한국을 각자의 방향으로 끌어당기려는 인력(引力)을 더욱 억세게 만들고 있다. 안미경중은 안 된다는 미국의 경고엔 한국에 안보와 경제 모두 중국 억제 전선에 적극 동참하라는 다그침이 깔렸다. “상호 핵심 이익과 중대한 우려를 존중하라”는 시진핑 발언엔 대만 문제 등 중국 때리기에서 벗어나라는 압박이 보인다.
이럴수록 일관성이 중요하다. 1시든 1시 반이든 방향을 정했다면 진폭이 커선 안 된다. 미국 앞에선 미국에 부응하고, 중국 앞에선 중국에 영합하는 임기응변의 줄타기 외교는 불신을 자초한다. 시침을 크게 흔들지 않으려면 특히나 대만, 주한미군 등 민감한 현안마다 원칙을 정교하게 세워야 한다. 그 원칙에 디딘 유연한 외교가 반복될수록 무게감이 생기고, 우리도 ‘여기만큼은 넘지 말라’는 외교의 마지노선이란 걸 가질 수 있다. 그래야 우리 결정에 불만이 있더라도 존중받고 설득할 수 있다. 그 무대에서 대통령의 언사 하나하나가 대선 전과 달리 천금같이 무거워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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