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기득권 사수’ 연금 개혁조차 안 된다니

2 days ago 4

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연금 개혁이 순조롭지 않으리란 징조는 있었다. 4일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기구인 전국노동위원회를 새로 출범시켰다. 이날 출범식에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반도체 특별법의 주 52시간 노동 예외 조항, 연금 개혁의 자동 안정화 장치 등 논의 과정에서 노동자 권익이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노동계 표심을 향한 공개 구애였다.

그로부터 6일 뒤 여야는 국정협의회를 열고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0%에서 43%로 올리는 방안을 두고 합의를 시도했으나 결국 파행했다. 그간 국민의힘은 42%, 더불어민주당은 44%를 주장했고, 그 중간선이 43%다. 하지만 민주당이 44%에서 물러서지 않으면서 협상이 결렬됐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간신히 불씨가 살아났던 연금 개혁이 다시 무산될 위기다.

정규직-고소득 근로자를 위한 개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연금은 오래 부을수록, 임금이 높을수록 많이 받는 구조다. 바로 정년을 보장받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3%, 그런데 공공 부문은 72%, 공무원 부문은 67%다. 민간 부문은 9.8%에 불과하지만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가면 37%로 뛴다. 이들이 주요 구성원인 양대 노총이 소득대체율 인상에 집착하는 이유다.

지난해 정규직 근로자 임금은 362만 원으로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195만 원)의 1.8배였다. 연금도 임금만큼 더 받게 된단 뜻이다.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연금이 임금보다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후 적정 생활비에 해당하는 국민연금 150만∼200만 원을 받는 수령자는 평균 32년을 납부했다. 일자리가 불안정한 비정규직 근로자, 자영업자 등은 이렇게 오래 붓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입 규모가 들쑥날쑥하고, 꼬박꼬박 내기도 어렵다.

세대 내 불평등뿐만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도 악화시킨다. 먼저 소득대체율을 높여 노인 빈곤을 해결하자는 주장은 기만에 가깝다. 현재 전체 노인의 절반 정도만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가난한 노인들은 애초부터 국민연금 수령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청년은 어떤가. 국세청 소득 신고를 기준으로 보면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가 86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4명 중 1명이 청년이다. 구직조차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는 청년은 50만 명까지 늘었다. 보험료를 낼 형편이 되지 않는 청년들이 나중에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까지 보전해야 할 처지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청년을 희생시켜 현재 40, 50대가 혜택을 누리겠단 것이다.

여야, 연금 개혁 진정성 있었나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당”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연금 개혁만 본다면 꼭 들어맞는 말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연금 개혁에는 관심이 없다. 소득대체율을 올려 불어난 빚더미는 가난하고 숫자도 적은 청년 세대에 전가되는 반면에 그 혜택은 공기업과 대기업, 은행 등 고소득 정규직에 돌아간다. 지금의 연금 개혁안은 ‘상위 10%’ 근로자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할 뿐이다.

여야에 그런 연금 개혁안이라도 좋으니 처리를 촉구했던 건 개혁의 시급성 때문이다. 하루 885억 원씩 적자가 쌓이고 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양보하고 서둘러 초당적 합의를 끌어내 개혁의 시간을 벌어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소득대체율 단 1%포인트 차이로 그조차 불발됐다. 여야가 연금 개혁에 진정성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수권 정당 자격을 연기하면서 결국은 조직화된 노조 표심에 ‘소득대체율 최소 43%’를 약속하는 현란한 구애를 펼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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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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