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엔 ‘보호막’을, 기업엔 ‘족쇄’만
‘노동자’를 무조건 보호해야 할 약자로 정의하는 순간 그들을 고용하는 ‘기업’은 언제든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이재명 정부의 행보도 현재까지는 이런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작년 8월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원청 기업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줬고, 경영상의 결정도 파업의 이유로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법 시행은 다음 달인데 전국금속노동조합은 벌써 하청 기업에 투쟁 지침을 전달했다고 한다. 기업의 대(對)노조 전력이 분산되는 것을 지켜보는 대기업 노조만 한층 여유로워졌다.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추진 중인 ‘근로자성 추정제’와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도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예고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의지도 강하다.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이 소송을 걸면 기업은 그들이 ‘근로자가 아님’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명칭부터 ‘추정’이 들어가니 법 조항들도 모호할 게 뻔하다. 그 어려운 일을 맡아줄 대형 로펌들만 축포를 터뜨리게 생겼다. 주 4.5일제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의가 더해지면 기업들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보호막이 늘어나는 노동자와 달리 기업들은 더 많은 족쇄를 차고 있다. 법인세율을 기어이 1%포인트 올리더니 상법 개정은 벌써 세 번째 라운드가 진행 중이다. 부도덕한 경영주가 자기 뜻대로 못 하도록 견제 장치를 두는 것인데 왜 멀쩡한 경영주들까지 어렵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에는 수백만 원씩 투자한 개인 주주들이 아니라 수천억 원씩 지분을 몰래 사 모은 뒤 경영진을 협박하는 해외 투기자본 세력만 웃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머쓱해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외국인 투자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기업 지배구조 개혁, 주식시장 정상화, 지방 투자 확대 등에 발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외국인 자본 투자자가 아닌 한국에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를 주제들이다. 외투 기업들의 요청 1, 2순위에 노동 정책이나 세제 개혁이 항상 오른다는 사실을 행사를 준비한 참모진은 정말 몰랐던 걸까.AI로 인한 인력 재배치 일상화 시대유럽에는 이미 훌륭한 반면교사 모델들이 있다. 프랑스가 1998년 세계에서 처음 시행한 ‘주 35시간 근로제’는 20년 가까이 경제 성장을 방해한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2000년대 초반 근로자 해고를 원천 봉쇄한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그 여파가 누적되면서 청년 실업률이 40∼50%에 달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지금은 특히 인공지능(AI) 쇼크로 대규모 인력 재배치가 일상화되고 있는 시대다. 미국 빅테크들은 AI가 대체할 인력을 수만 명씩 내보내면서도 전체 고용은 오히려 늘리고 있다. 노동시장 경직도가 세계 선두권인 한국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통령도 작년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유연성’이란 단어를 어렵게 꺼낸 적이 있다. 실용주의가 구호에만 그치지 않으려면 이제 그에 대한 실천 과제들을 내놓을 때가 됐다.
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11 hours ago
2
!['공항서비스 1위'의 대역사와 안전·보안 [이호진의 공항칼럼]](https://img.hankyung.com/photo/202602/01.43239975.1.jpg)
![[부음] 고대로(한라일보 편집국장)씨 장모상](https://img.etnews.com/2017/img/facebookblank.png)
![[5분 칼럼] 쌀값 급등 반년, ‘먹사니즘’은 어디로 갔나](https://www.chosun.com/resizer/v2/ZL63CSKZAZBUPOQ4BOZTI7SLQ4.png?auth=d867c3f0e40b8902fed63d32fef8636396cc9cf1498dc1e2df7529e0e9ca3b3f&smart=true&width=500&height=500)
![20년 용산 개발의 꿈, 성패 가를 첫걸음[민서홍의 도시건축]](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팔면봉] 계속되는 ‘쌍방울 변호인 특검 추천’의 餘震. 외](https://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사설] 强日·反中 다카이치 압승, 중·일 격랑 대비해야](https://www.chosun.com/resizer/v2/B5C2CKC23FGUXOSRAVITA564PQ.jpg?auth=6dbcc791c8698cf0c48a7eb9dbfc701bdb5fcced76e671ca04a63af9232d475a&smart=true&width=960&height=649)
![[사설] 반도체, 韓 달아나는 속도보다 中 쫓아오는 속도가 빠르다](https://www.chosun.com/resizer/v2/BQ7L3A36PJE4TOJPAS26T4J7YY.png?auth=9a2161dc3826ff7b6d79f30ba1da2c2b86a416caff2cfee271a5cb6d2091a931&smart=true&width=750&height=528)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