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하수도 망은 다른 도시에 비해 독특하다. 전반적인 전체 설계를 철저히 했다. 500년 전부터 점차 진화돼 오고 있다. 수학과 토목 기술 특히 측량 등의 당시 최신 기술이 총동원됐다.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하수도망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대단했다.
하수도망(우수, 중수, 생활하수, 폐수 구분) 안에 타 용도의 망도 함께 부설했다. 상수도망, 난방온수망, 가스망, 송배전망, 통신망, 압축공기 송풍망 등이 함께 가설돼 있다. 파리는 지상에 전봇대가 없다. 모든 도로의 연장 길이보다 오히려 하수도망 연장 길이가 더 길다. 약 3만개소에 맨홀 뚜껑이 있고 여기를 통해 지하 하수 관거로 출입할 수 있다. 모든 하수도망은 고유 이름이 있다. 바로 지상의 도로명과 꼭 같이 사용한다. 콘크리트와 철근을 사용하는 기술에 대해 활용성이 낮은 초창기에는 주로 벽돌을 사용했다. 벽돌로 아치를 만들었다. 양편 기둥과 벽의 힘이 중앙으로 수렴하게 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무게를 받치게 했다. 벽돌 하나의 크기나 모습은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끄떡없이 벽돌 한 장은 그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도시에 필요한 여러 유틸리티를 지하도로 속에 묶어 운용하게 되면 좋은 점이 또 있다. 도로 지반이 함몰되지 않아서, 도로 어느 부위에 싱크홀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은 설계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현재의 요구사항 뿐 아니라 미래에 나타날 만한 요구사항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세세한 요구사항까지 빠짐없이 열거하고 이들에 대한 비중을 평가해야 한다. 미래 확장성도 고려해야 한다. 요구사항 중에는 그들끼리 서로 상치(모순)되는 상태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를 어떻게 조율(트레이드 오프)할 것인지가 설계 품질에 있어 관건이 된다. 좋은 설계가 되기 위해서는 상위 권력자들이 설계에 대한 몰이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설계자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해야 한다. 설계자는 인문사회 등 모든 면에 걸쳐 관련 지혜에 접근하고 의사소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초 과학과 응용 기술에 대해서도 통달 수준에 있어야 한다. 제삼자에 의한 설계 검토, 검증, 확인도 착실히 이행해야 한다.
1970년대 초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를 하면서 지하철 상부에 관거를 설치해 도시에 필요한 여러가지 유틸리티 관들을 넣자고 제안이 되었을 때, 예산이 없다고 이 안이 폐기됐다. 논란이 거듭되다가 결국 유틸리티 관거를 설치하는 것으로 가닥이 다시 잡히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주어진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국가의 진운을 가르게 한다.
많은 시민들이 살면서 위생적이고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큰 요구에 걸맞게 파리의 하수도 설계자들은 최고의 명품 설계를 했다. 상위 권력자들이 불필요한 개입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의 비전, 공학자들에 대한 신뢰와 자신이 가진 공학적인 배경 지식 등이 튼튼했기에, 최초의 아치형 하수 관거, 30킬로미터가 건설됐다. 오늘 날까지 파리 하수도 망이 건재하고 있다. 당시 군공학에서 민수용 공학(시빌 엔지니어링)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가덕도 진흙 뻘 위에 활주로를 놓는다는 계획은 하루빨리 폐기돼야 한다. 양 가죽을 쓴 가짜 지도자들이 파리의 하수도망 같은 국가 지속발전을 위한 재개발 사업을 방해하고 있을 뿐이다. 부등침하하는 활주로를 아무리 보수 예산을 많이 들인다 한들 그 활주로는 계속 부등침하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파리 하수도망의 한 벽돌이 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영도력을 발휘할 국가 경영자가 필요하다. 국민 염원의 통합이 중요하다. 국민은 파리의 지하시설에 놓인 벽돌 같은 역사의 진운을 이고 가고 싶다. 국민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벽돌 한 장이 갖는 정신을 소중히 여기며 이를 잘 결합시켜 엄청난 시너지를 내게 하는 선현을 기다린다.
여호영 지아이에스 대표 yeohy_gi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