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새 정부 노동 공약 중 가장 필요한 정책과제를 묻자 주4.5일제보다 '단계적 정년연장'이 1순위로 지목됐다. 고령화에 따라 생계형 노동에 뛰어든 노인 인구가 일하는 청년에 버금갈 정도로 늘어난 데다 퇴직과 연금 수급 시기 사이에 발생하는 소득 공백이 정년연장 필요성으로 수렴됐다는 분석이다.
18일 한경닷컴이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에 의뢰해 직장인 1051명을 조사한 결과 703명(복수응답)은 '법정 정년을 65세로 단계적 연장'하는 방안을 가장 필요한 제도 1순위로 꼽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10~11일 이틀간 리멤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새 정부 노동 정책공약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번 조사에선 단계적 정년연장이 '주4.5일제'보다 더 필요한 제도로 꼽혀 눈길을 끌었다. 그간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둘 때마다 시행됐던 노동계·경영계 설문조사를 보면 주4.5일제가 직장인들 '최애 공약'으로 지목돼 왔다.
이번 조사의 경우 '필요한 정책'과 '선호하는 정책'을 구분해서 물었다. 그 결과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단계적 정년연장'이, 가장 선호하는 정책으로 '주4.5일제'가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정년연장이 주4.5일제보다 우선순위에 오른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정책공약집을 통해 법정 정년을 65세로 단계적 연장하고 올해 안에 입법과 범정부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단계적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덴 고령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지난달 기준 60세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49.4%에 달했다. 60세 인구 절반 이상은 일을 하고 있거나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15~29세 청년층(49.5%)과 비교하면 0.1%포인트 차이다. 노인 빈곤율이 높아 경제활동이 불가피한 현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 개편도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단 분석이다. 연금 부담은 커질 전망인 데다 수급 연령과 정년 이후 기간 차이로 소득 공백이 우려되면서 정년연장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것.
실제 연금 부담은 내년부터 0.5%포인트씩 단계적으로 인상된다. 수급 연령은 기존 규정에 따라 1969년 이후 출생자가 2033년부터 만 65세를 기점으로 연금을 받고 1969년 이전 출생자는 연령 구간별로 만 61~64세에 연금을 받는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정년 퇴직한 이후 연금을 받기까지의 소득 공백 기간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고 노후 보장이나 소득 문제와 연결된 문제로 정년 문제가 다가오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는 "초고령화라는 사회 변화 속에서 정년연장에 공감한 것"이라면서도 "이미 연금 수급 연령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늦춰져 있는 상태인데 현재 60세 정년인 사람들을 65세로 늘려 더 일하게 하면 그만큼 더 연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 입장에선 연금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 수 있다는 타산적 응답이 나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멤버 조사가 현재 재직 중인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정년연장을 지지하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가 없는 입장에서 보면 (정년연장이 될 경우) 취업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정년연장에 찬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구직자라 해도 자신이 취업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정년연장 자체가 나쁠 것이 없고 지금도 40~50대 명예퇴직을 강요하는 일이 민간기업에서 나타나는데 정년연장이나 유지라면 모르겠지만 누가 단축하는 것을 선호하겠나"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닐수록 주4.5일제보다 정년연장이 더 큰 혜택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재직자 대상 조사에선 긍정적 응답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
개인적·사회적 경험이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단 해석도 제기됐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4.5일제도 피부에 와닿는 일이겠지만 현재 직장인들의 부모세대는 정년에 대한 고민들이 많고 이미 퇴사를 했을 텐데 이런 조기에 실직하는 모습이 트라우마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기술을 배울지 아니면 창업을 할지 이런 고민에 빠진 부모를 눈앞에서 목격한 입장에선 정년연장만큼 피부에 와닿는 것이 없을 것"이라며 "60대도 마찬가지고 사회초년생들이 봤을 때도 앞으로 '내 일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인식을 갖고 지지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