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물고기’라는 문어, 한국에선 귀한 식재료[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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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문어는 많은 나라에서 기피한다. 머리와 다리가 연결된 모습이 기괴해 전설 속 바다 괴물로 묘사된다. 북유럽에서는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라며 혐오의 대상이다. 종교적인 배경이 원인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같은 종교를 가진 여타 국가에서는 즐겨 먹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문어를 기피하는 원인을 문화적인 코드와 상징적 의미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북유럽과 달리 지중해와 인접한 국가에선 문어 요리를 좋아한다. 얼마 전 스페인과 모로코,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이들 나라 국민들이 문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것을 알았다. 통조림도 잘 팔리기에 맥주 안주용으로 샀는데 몇 점을 먹고 버렸다. 기대했던 쫄깃함은 없었고, 올리브유에 절인 푸석한 식감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중해 연안 국가 못지않게 문어를 좋아하는 곳으로는 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을 꼽을 수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멕시코도 문어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꼽힌다. 좋아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문어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

전통적으로 문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외형에 주목한 듯하다. 문어라는 이름에 관한 설은 크게 두 가지다. 얼룩얼룩한 무늬가 있어 ‘무늬 문(文)’자를 써서 ‘문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또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문어가 사람의 머리와 닮아서 문어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민머리 물고기라는 뜻에서 ‘믠어’라고 하다가 ‘문어’가 됐다는 설이다. 어원은 확실치 않지만, 먹물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특징이 ‘문(文)’자와 결부돼 선비를 상징하는 물고기가 됐을 터. 이 외에도 다리가 여덟 개라는 의미로 ‘팔초어’ 혹은 ‘팔대어’라고도 했다.

고려시대 경주 지방의 반란을 수습한 장수가 현지 특산물인 문어를 보내 오자 기뻐 화답하는 시가 이색(1328∼1396)의 ‘목은시고’ 에 담겨 있다. 고려시대에도 문어를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어는 조선의 바다에서 두루 잡혔으나 비싼 가격에 판매됐다. 정조 때 해산물 거래 명세를 보면 큰 문어는 당시 고급 어종이었던 광어와 대구보다 몇 배로 비쌀 만큼 귀한 식재료였다. 현재 전국에서 문어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바닷가가 아닌 대구와 안동이다. 경북 내륙 지역은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문어가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목포를 중심으로 한 전남에 홍어가 있다면, 경북 내륙에는 문어가 있다.

문어는 생물학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사람을 기억하고 미로를 통과하는가 하면, 병뚜껑을 따는 등 여러 실험에서 문어는 높은 지능을 가진 듯한 행동을 보인다. 또 다른 동물 모습을 흉내 내거나 장난을 치고, 도구를 이용한다. ‘바다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릴 만큼 머리가 좋은 연체동물인 셈이다. 개 정도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심장이 세 개라는 점도 특이하다. 체심장은 온몸으로 피를 보내 에너지를 공급하고, 아가미심장 둘은 피를 전달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산소를 얻는 데 사용한다. 다리에 뉴런의 3분의 2가 모여 있어 뇌의 명령을 받지 않고 기본적인 움직임을 수행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 있다. 카멜레온보다 뛰어난 위장술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어는 여러모로 신비한 생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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