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미술관 vs 박물관' 구분 꼭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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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미술관 vs 박물관' 구분 꼭 필요할까

지난해 겨울, 나는 서울에서 빈 분리파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티켓을 예약했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포스터, 공예품까지 아우르며 빈 분리파의 예술적 유산을 총체적으로 보여줬다.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나는 의문이 생겼다. “이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고?” 빈 분리파의 작품이 왜 미술관이 아니라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명확히 구분해 박물관은 역사적 유물과 자료를 다루고, 미술관은 회화·조각 등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구분은 1991년 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비롯됐다. 이 법에 따르면 박물관은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등의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미술관은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이다. 이런 법적 정의와 구분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동등한 층위의, 본질적으로 다른 기관으로 여기도록 만들었고 더 나아가 조선 후기까지의 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이후의 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관리하는 기이한 관행을 낳았다.

본래 ‘뮤지엄(Museum)’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과학의 수호신 ‘뮤즈(Muse)’에서 유래했다. 이후 각국의 역사·사회적 배경에 따라 뮤지엄의 개념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유럽에서는 왕실과 귀족이 축적한 문화유산이 공공으로 전환되며 뮤지엄이 발전했는데, 프랑스의 루브르와 영국의 브리티시 뮤지엄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기업과 개인 주도의 사립·주립 미술관 모델이 중심이 돼 기업가의 기부, 정부의 세금 우대 정책을 기반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가 성장했다.

반면 한국은 국가가 중심이 돼 문화재 보존과 역사 기록을 위한 공공 박물관과 국공립 미술관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처럼 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형성됐지만, 뮤지엄이라는 공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역할, 즉 인간의 문화적 진화를 기록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성찰의 장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국제뮤지엄협회의 2022년 뮤지엄 정의도 이런 통합적 시각을 반영한다.

“유무형 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기관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 다양성과 지속성을 촉진하며, 공동체의 참여로 윤리적,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소통하며, 교육·향유·성찰·지식 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위 정의는 단순한 공간적 구분을 넘어 박물관과 미술관을 뮤지엄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런 논의는 최근 더욱 실질적인 고민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에는 동서양의 근대 미술품뿐만 아니라 문화재와 유물도 함께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새로 건립될 이건희 기증관은 박물관인가, 미술관인가?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를 “미술관과 박물관을 통합하는 복합 문화시설”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작 그 공식적인 정체성은 불분명하다. 단순히 두 개념을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더 이상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인위적인 구분에 얽매이기보다 뮤지엄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그 역할을 확장하고 새롭게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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