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처럼 맑고 고운 살결. 낭랑한 목소리로 부르는 ‘도금호’ 노랫가락.버들처럼 늘씬한 자태야 익히 보았지만, 어찌 그대와 같으리오. 이월 초 두구 가지 끝에 막 피어난 꽃이 아니던가.젊은 시절은 잠깐이오. 이 좋은 때, 취할 틈을 얻었구나.비단 장막은 은빛 촛불 뒤로 드리워졌으니 한껏 즐기리라. 평생의 늠름한 기개마저 풀어놓으리라.(寒玉細凝膚. 清歌一曲倒金壺. 冶葉倡條遍相識, 爭如. 豆蔻花梢二月初.年少即須臾. 芳時偷得醉工夫. 羅帳細垂銀燭背, 歡娛. 豁得平生俊氣無.)―‘남향자·집구(南鄕子·集句)’ 소식(蘇軾·1037∼1101)대문호도 신혼 앞에서는 별수 없다. 이 노래에는 훗날의 호방한 동파보다 아내에게 푹 빠진 젊은 소식이 먼저 보인다. 시인은 첫 아내 왕불(王弗)의 용모와 재능을 그리며 신혼의 들뜬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맑은 노랫소리와 고운 자태, 꽃다운 생기를 차례로 펼쳐 아내의 매력을 눈앞에 살려 낸다. 젊음도, 좋은 때도 잠깐이니 눈앞의 기쁨을 놓치지 말자는 달뜬 마음이 역력하다. 근엄한 도학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 밤만큼은 큰 뜻도 잠시 미뤄 두자는 고백이다. ‘늠름한 기개마저 풀어놓으리라’는 과장은 신혼의 환희와 소식 특유의 활달한 성정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집구(集句)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했다. 백거이와 두목 등 이름난 시인들의 구절을 엮었지만, 그 솜씨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남의 재료로 자기만의 맛을 내는 솜씨 좋은 요리사와도 같다. 그러나 작품의 묘미는 기교에만 있지 않다. 남의 문장을 빌렸으되, 사랑만큼은 온전히 제 것이다. ‘남향자’는 곡조명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신혼에 취한 사내[이준식의 한시 한수]〈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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