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김수근이 설계한 남영동 대공분실, 공포의 도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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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수근(1931∼1986·사진)은 한국 사회와 공간의 흐름을 바꿔놓은 건축가로 평가받습니다.

일제강점기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일본에 건너가 도쿄예술대, 도쿄대 대학원에서 국제 감각을 익힙니다. 고국으로 돌아와 ‘공간사’와 ‘공간건축연구소’를 창립해 후배 건축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세운상가, 워커힐호텔, 국립부여박물관 등 한국 근현대 건축사에 획을 그은 대표작을 수없이 남깁니다.

하지만 김수근의 이름은 온전히 ‘건축의 미학’이나 ‘공간의 조형성’만으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가 설계한 수많은 건축물 가운데 하나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장면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6년 유신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은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을 그에게 맡깁니다. 당시 정부 의도에 따라 외형은 근대적이되 내부는 철저히 통제와 억압을 위해 설계된 건물이 완성됩니다.

나선형 계단과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 창 없는 밀실, 소리 반향마저 차단된 공간은 고통과 공포를 증폭시키기 위한 도구가 됐습니다. 천재적인 김수근의 설계는 건축 언어로 공포, 그 자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1987년 1월 14일 세상과 단절된 그 건물에서 22세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 끝내 숨졌습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책임자의 망언은 국민적 분노에 불을 지폈고, 마침내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군사 독재가 무너졌고, 대통령 직선제 도입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뒤따랐습니다.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동안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 한가운데서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해당 건물은 ‘민주인권기념관’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자리 잡았습니다. 고문실은 시민에게 개방돼 그날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전시실에는 당시 진실을 담은 사진과 음성이 남겨져 있습니다. 억압 공간이 기억과 성찰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김수근은 여전히 한국 건축계 태동기를 이끈 인물이자 한국 건축 거장으로 기억되지만 그가 남긴 남영동 건물은 시대의 어둠을 안고 있는 유산입니다. 권력과 저항, 진실과 침묵, 예술과 윤리가 교차했던 비극적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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