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야기로 배우는 쉬운 경제]금을 이긴 달러… 미국이 ‘세계 패권국’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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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산업혁명 이후 금본위제 도입
세계대전 이후엔 美 중심으로 전환… 금 보유량 줄며 27년 만에 태환 중지
현재 국제 통화 기준에서 ‘금’ 삭제… 달러 중심 변동환율제 채택해 운영

국제 통화는 영국 주도 금본위제, 미국 달러 중심 고정환율제를 거쳐 변동환율제로 변화돼 거래되고 있다. 변동환율제는 외환시장에서 외국 돈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환율에 따라 운영된다. 한국을 비롯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많은 나라는 변동환율제를 운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국제 통화는 영국 주도 금본위제, 미국 달러 중심 고정환율제를 거쳐 변동환율제로 변화돼 거래되고 있다. 변동환율제는 외환시장에서 외국 돈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환율에 따라 운영된다. 한국을 비롯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많은 나라는 변동환율제를 운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화폐의 기원은 불편함입니다. 농사를 지은 A가 고기를 가진 B와 물물교환을 하려는데, B가 배가 불러 원치 않는다면 A는 거래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교환의 어려움은 사람들에게 ‘어디서나 통하고, 누구나 원하는’ 매개물을 찾게 했습니다. 바로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이었습니다.

금속 화폐는 고대 리디아(현재 튀르키예 서부)에서 처음 주조됐습니다. 이후 고대 로마와 중국, 인도에서 널리 사용됐습니다. 특히 금은 산출량이 제한돼 있고 위조가 어렵기 때문에 가치 저장 수단으로 신뢰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통화 체계는 없었습니다. 모든 거래는 그때그때 지역 관습과 정치력에 따라 이뤄졌고, 전쟁이 일어나면 신뢰는 언제든 깨졌습니다.

● 19세기 영국이 주도한 금본위제

19세기 본격적인 금본위제 시대가 열립니다. 그 중심에는 산업혁명과 대영제국의 팽창이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 경제의 선두 주자가 됐습니다. 이후 무역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안정적 국제 거래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은 1816년 금본위제(Gold Standard)를 공식 도입합니다. 1파운드에 해당하는 금의 양(약 7.3g)을 법으로 정하고, 파운드화를 가져오면 언제든 정해진 양의 금으로 교환하는 걸 보장한 것입니다. 영국 파운드화는 곧 금이 됐습니다. 파운드화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서 다른 나라도 점차 이 제도를 따랐습니다. 1870년대에는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금본위제에 동참하게 됩니다.

각국 화폐의 신뢰성이 높아지면서 자유무역이 왕성해지고 금융의 세계화도 동시에 발전하게 됐습니다. 파운드화는 사실상 세계의 기축통화였고, 런던은 세계의 금융 수도로 군림합니다. 금이 담보하는 환율의 안정성과 제국주의적 군사력이 만나면서 ‘무역의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가 형성됐습니다. 팍스는 평화를 의미하는 라틴어로 영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평화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안정된 질서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금 태환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지폐를 무제한 발행합니다. 전쟁 후 금본위제 복귀를 시도했지만, 이미 돈의 신뢰는 흔들린 상태였습니다. 이 시기 세계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회귀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더 큰 파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미국 달러 중심 고정환율제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1944년 미국 북동부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 브레턴우즈에서 전 세계 주요 44개국 대표들은 새로운 국제 통화 질서를 만들기 위한 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 주도권은 승전국 미국이 쥐고 있었고, 미국이 제안한 달러 중심 체제인 ‘브레턴우즈 체제’가 채택됩니다. 이 체제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 1온스(31.1035g·약 8.3돈) 가치를 35달러로 고정하고 각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합니다. 미국은 금 태환을 보장함으로써 달러의 신뢰를 유지하고, 통화 안정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당시 전 세계 금 보유량의 70%를 가지고 있었고, 경제 규모도 압도적이라 이러한 체제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달러가 사실상 세계 공용화폐가 되면서 미국은 패권국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도 영원히 금을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1960년대 들어 베트남 전쟁, 대규모 복지 지출, 우주 개발 경쟁 등으로 미국은 막대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를 기록합니다. 그 결과 전 세계에 달러는 넘쳐났고, 각국 중앙은행들은 달러를 금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1965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가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꾸기 위해 미국으로 군함을 보냈고 금을 회수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미국은 보유한 금이 바닥나고, 브레턴우즈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달러의 금 태환 중지를 선언합니다. 이른바 ‘닉슨 쇼크’로 불리는 이 조치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사실상 종말을 의미합니다.

● 변동환율제 채택한 현 킹스턴 체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1976년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서 IMF 회원국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새로운 통화 질서가 바로 현재 국제 통화 체제인 킹스턴 체제입니다. IMF 정관에서 ‘금’을 기준으로 하는 내용을 공식적으로 삭제합니다. 이후 금은 국제 통화의 기준이 아니라 단순한 상품(귀금속)으로 다뤄지게 됩니다. 각국의 환율은 각국의 외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로써 고정환율제는 선택 사항이 됐고, 대부분의 국가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게 됩니다. 환율 조작이나 극단적 변동을 막기 위해 IMF가 회원국의 환율 정책을 감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했습니다.

킹스턴 체제는 브레턴우즈 체제처럼 고정된 틀과 기준 통화가 있는 체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 간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장하면서도 국제적인 감시와 협력을 병행하려는 ‘절충형 체제’입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미국 달러 지배력이 여전히 유지되는 가운데, 금이 사라지고 시장 메커니즘에 따른 환율이 작동하게 된 셈입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금으로 포장된 달러의 시대’였다면, 킹스턴 체제는 ‘시장이 결정하는 달러의 시대’입니다. 달러는 더 이상 금에 묶여 있지 않지만, 세계는 여전히 달러를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는 것 같군요. 미래 디지털 정보 사회에서 국제 통화 질서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이철욱 방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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