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형식적인 고민을 할 시기는 지났습니다. 대신 '나보다 인공지능을 잘 쓰는 누군가가 내 직업을 뺏는다'는 고민을 해야 할 때죠.”
지투 파텔 시스코 사장 및 최고제품책임자(CPO)은 11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자사 연례 콘퍼런스 ‘시스코 라이브 2025’에서 "그동안 기업들이 인프라와 보안 문제 등을 고민하느라 AI 도입을 주저했다면, 이제 AI를 잘 써야만 살아남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장을 따라잡는 것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AI 인프라 기업 시스코가 자사 AI 인프라를 대폭 업그레이드하며 기업 간 거래(B2B) AI 시장 공략에 나섰다. 올해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새로운 AI 네트워크 장비와 AI 업무 자동화 시스템 'AI 캔버스'를 새로 선보인 데 이어, 진화된 AI 보안 기술도 공개했다.
시스코는 지난해 '본격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기업의 주요 포트폴리오였던 네트워크 인프라 장비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는 현실을 체감하면서다. 시스코는 미래 먹거리를 AI 서비스와 보안에서 찾았다. 기업들의 관심이 AI 도입과 보안 문제 해결로 몰릴 것이라고 판단해서라는 게 시스코의 설명이다. 기업 체질 전환 선언 이후 처음 열린 올해 행사 첫날에는 약 2만2000여 명의 개발자들이 몰렸다.
"AI 시대, 진화된 '제로 트러스트 보안' 필요"
시스코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차세대 보안 기술'을 강조했다. 기조연설 무대에 선 척 로빈스 시스코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제로 트러스트 보안 기술'을 내세우며 자사 보안 서비스를 소개했다. 제로 트러스트란 '아무것도 신뢰하지 않고 항상 검증한다'는 보안 모델이다. 네트워크 내부, 외부의 모든 사용자, 장치 등에 대해 명시적인 필요성이 확인될 때까지 접근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시스코는 기조연설을 통해 자사가 개발한 '하이브리드 메쉬 방화벽'과 '유니버설 제로 트러스트 네트워크 액세스(ZTNA) 솔루션'을 공개했다.
로빈스 CEO는 "제로 트러스트 보안도 AI 시대에 맞춰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네트워크에 진입하는 인간뿐만 아니라 기기와 AI까지 모두 잠재적 위협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스코가 새롭게 공개한 AI 보안 서비스 '유니버셜 ZTNA'는 인간과 기기, AI 에이전트뿐만 아니라 와이파이 등 네트워크 장비에 모두 지문을 부여하는 기술이다.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보고된다. 파텔 사장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유니버셜 ZTNA를 소개하며 "시스코는 현재 가장 안전한 AI 보안 플랫폼을 가진 회사가 됐다"고 자부했다.
하이브리드 메시 방화벽도 2종도 함께 공개됐다.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방화벽인 '6100 시리즈'와 지점용 방화벽인 '200 시리즈'를 내놨다.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형 인프라용과 일반 지점용 방화벽을 따로 분리하며 가격 대비 성능을 경쟁사에 비해 최대 3배 이상 높였다는 게 파텔 사장의 설명이다.
시스코는 이날 자사가 2023년 약 280억달러(약 37조원)을 들여 인수한 보안 전문 기업 스플렁크와의 시너지도 강조했다. 로빈스 CEO는 "스플렁크가 가진 대규모 보안 데이터를 시스코의 스위치 인프라와 서비스에 적용한다"며 "데이터를 통합하는 기술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 스플렁크와 시스코의 보안 노하우가 만나면 더욱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코는 지난해 말 본격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기업의 주요 포트폴리오였던 네트워크 인프라 장비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는 현실을 체감하면서다. 시스코는 미래 먹거리를 AI 보안에서 찾았다. AI 시대 기업들의 관심이 보안 문제의 해결로 몰릴 것이라고 판단해서라는 게 시스코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업 체질 전환 선언 이후 처음 열린 올해 행사 첫날에는 작년의 2배에 달하는 2만2000여명의 개발자들이 몰렸다.
분석, 제안, 보고서 작성까지 'AI 동료'가 다 해준다
이날 현장에서 개발자들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서비스는 'AI 캔버스'다. AI를 단순 질문용 챗봇이나 분석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함께 일하는 '직원'으로 진화시켰다. 오는 10월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시스코는 AI 캔버스를 통해 기업용 에이전틱 AI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기조연설 현장에서 직접 AI 캔버스 구동 과정을 시연하며 서비스를 강조했다.
AI 캔버스는 빈 화면에서 시작한다. 이용자가 채팅에 업무 내용을 입력하면 AI도 함께 업무에 뛰어든다. 인간과 AI가 함께 팀을 이뤄 문제를 해결하는 셈이다. 빈 화면은 AI가 분석한 결과값으로 채워진다. 파텔 사장은 "추가 명령을 할 때에도 창을 이동하거나 스크롤할 필요가 없다는 게 기존 서비스와 가장 다른 점"이라며 "마치 빈 캔버스를 AI가 채워주는 셈이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팀원을 초대하더라도 기존의 업무 내용이 즉시 공유된다.
기조연설에서 파텔 사장은 AI 캔버스와 함께 딥 네트워크 모델도 공개했다. 네트워크의 트래픽 흐름, 장애 여부, 성능 저하, 보안 위협 등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AI 엔진이다. 파텔 사장은 "AI가 실시간으로 해당 내용을 미리 예측해주면 운영자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업이 모델을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한 뒤에 수습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AI가 비정상 트래픽, 신종 해킹 패턴 등을 실시간으로 탐지한 뒤 자동으로 방어 조치에 들어간다. 트래픽이 과부하될 경우에도 자동으로 분산시켜준다. 멀티클라우드 등 복잡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환경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지투 파텔 대표는 "2022년 챗GPT가 등장했을때만 해도 AI는 단순히 '챗봇'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하지만 약 3년 만에 AI는 하나의 인격체처럼 진화했다"고 언급했다. AI를 단순히 인간의 직장을 위협하는 기술이 아닌 '동료'로 인정하고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샌디에이고=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