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일자리를 찾지 않고, 취업 준비조차 하지 않으며 그냥 쉬는 청년이 50만 명을 넘어섰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다. 가장 왕성하게 일해야 할 청년들이 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채용시장의 한파가 매섭다는 뜻이다.
이처럼 많은 청년이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쉬는 상황에서 노동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10여 년 전 정년 60세 의무화로 청년 고용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곳곳에서 제시되는 현실에서 법정 정년을 또 올리는 것은 청년들의 미래에 대못을 박는 것과 다름없다.
2013년 4월 국회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만에 정년 60세를 법제화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며 여야 모두 ‘정년 60세’를 공약했기 때문이다. 일사천리로 처리된 정년 60세 의무화는 청년들의 일자리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꼴이 됐다. 정년 60세는 강제하면서 그에 필수적인 임금체계 개편은 반쪽짜리 의무로 둔 부실 입법 때문이다. 정년을 앞둔 직원 1명 인건비가 신입 직원 3명 인건비와 맞먹는 상황에서 정년 60세가 강제된 기업은 청년을 직원으로 뽑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정년연장으로 줄어든 일자리가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기업·공공부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1000명 이상 기업에서 정년연장 후 7년이 지났을 때 청년 고용이 11.6%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작년에 정년제를 운영한 사업장은 10곳 중 2곳에 그쳤다. 다만 노조가 있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95%가 정년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결국 정년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처럼 그만두고 싶지 않은, 모두가 선호하는 좋은 일자리와 관계된 문제인 것이다.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를 주면서 청년 일자리도 함께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인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노동시장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임금체계 개편이다. 직장에서 단지 오래 근무한 사람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청년을 직원으로 채용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임금체계 개편이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바꿀 때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규정을 ‘의견 청취’로 완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사례를 잘 참고해야 한다. 일본도 1998년 정년 60세를 시행했고, 2006년에는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시행하면서 기업이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중 하나를 택해서 운용하도록 했다. 작년에 일본 21인 이상 기업의 67.4%가 재고용을 선택했다. 다만 지금까지도 일본의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다. 즉 일본 정부는 27년간 법정 정년을 60세로 유지함으로써 고령자 고용에 따른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준 것이다. 또 기업은 정년이 지난 근로자를 자사나 관계사에 재고용함으로써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도 제공했다. 우리도 일률적 법정 정년연장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고령자의 고용 형태나 근무 방식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일자리는 곧 삶이다.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미래 세대인 청년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아버지의 일자리를 위해 자녀들이 꿈과 열정을 펼칠 기회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