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경기 고양시에 사는 강기남(75)씨는 지난달 9일을 잊지 못한다. 6·25 전사자인 아버지 고(故) 강성순 하사의 유해가 75년 만에 그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강씨는 난생처음으로 비록 한 줌에 불과했지만 '아버지'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생후 11개월 된 아들을 남겨 두고 18세 나이로 참전해 전쟁 발발 당일인 1950년 6월 25일 '운천-포천-의정부 전투'에서 산화했다.
이미지 확대
(서울=연합뉴스) 24일 경남 함안군 충의공원에서 열린 6·25 전사자 유해 발굴 개토식에서 참석자들이 시삽하고 있다. 2025.4.24 [육군 제39보병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버지 유해를 집으로 모시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유해는 2007년 6월 경기 포천시 신북면에서 발굴됐는데 신원 확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한평생 아버지를 찾고자 했던 외동아들의 애타는 마음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땀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2007년 창설 후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를 위한 대대적인 홍보를 했고, 강씨도 이듬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응했다. 2017년에는 강씨의 아들도 할아버지를 찾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시료를 제공했다. 그런데 당시는 유전자 분석기술이 부족해 혈연관계 확인이 어려웠다. 이후 분석기술이 발전해 2021년 3월부터 발굴 유해를 대상으로 유전자 재분석이 이뤄졌고 올해 3월에야 신원 확인이 됐다.
2000년 4월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한 이래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강씨 아버지를 포함해 총 256명이다. 하지만 6·25 발발 75주년을 맞는 올해까지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묻힌 참전용사가 12만명이 넘는다.
국가보훈부가 6·25 75주년을 맞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 전사자 12만1천723명(작년말 기준)을 기억하는 '끝까지 찾아야 할 121723 태극기'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한다. 12만1천723명을 상징해 1∼121723번 고유번호가 부여된 태극기 배지를 만들어 캠페인 동참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다. 배지는 미수습 전사자들이 하루빨리 가족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참전용사 유골함에 태극기를 도포한 형상으로 디자인됐다.
호국 용사의 유해를 찾아 가족 품에 모시는 일은 숭고한 국가사업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국가의 무한 책임의지를 실현하는 일이다. 미군이 강한 이유가 국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줄 것이라는 미군 장병들의 강한 믿음이 한 요인이라고 한다. 실제 미국은 20년간 계속된 아프간전에서 단 한명의 미군 실종자도 남기지 않았고, 미군 유해 중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한 건도 없었다. '조국을 위해 싸운 군인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도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현충일이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06일 06시2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