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북한에 납북자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전단을 보내온 납북자단체가 이재명 대통령이 납북자 가족을 위로한다면 전단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앞서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중단을 요청했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이달 16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고교생 때 납북된 피해자들의 어머니를 불러 위로한다면 전단 살포를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90대 고령인 김태옥씨와 김순례씨를 만나달라고 했다. 김태옥씨의 아들 이민교씨는 18세 때인 1977년 8월, 김순례씨의 아들 홍건표씨 역시 18세 때인 이듬해 8월 각각 전남 홍도 해수욕장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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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전단 살포 이유와 내용 등에 관해 설명하며 납북된 가족들의 생사 확인 요청을 호소하고 있다. 2025.6.16
최 대표는 "이 대통령이 우리 할머니들 밥 한 끼 사주고 위로해주면 그걸로 끝난다"고 했다. 납북자 가족들이 정부의 자제 요청에도 대북 전단을 계속 보내며 관심을 끌려는 것은 그동안 납북자 문제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관심이 그만큼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느끼는 소외감도 컸을 것이다. 최 대표도 15살 때 아버지가 북으로 끌려갔다. 아버지는 1967년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하다 납북됐고, 6.25전쟁 당시 미군 산하 비정규 특수부대인 켈로부대에서 활약했던 사실이 드러나 1972년 북한에서 처형됐다.
6.25전쟁 이후 북한에 납치된 전후 납북자는 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사람만 500명이 넘는다. 전후 3천835명이 납북됐는데 이 중 3천319명(탈북 9명 포함)은 귀환했고 나머지 미귀환자 516명은 어민 457명, KAL기 납북자 11명, 군경 30명, 기타 18명으로 나뉜다. 기타에는 납치 당시 고교생이었던 5명도 포함된다. KAL기는 1969년 12월 11일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중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고, 탑승자 50명 중 39명은 65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으나 나머지 11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납북자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모두 자진 월북자라고 주장한다. 그간 일부 남북회담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으나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납북자 가족들은 2008년부터 대북 전단을 보내기 시작했고, 2013년 당시 박근혜 정부의 요청으로 중단했다가 지난해부터 재개했다. 이재명 정부는 불법적인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의 일상과 안전을 위협하고 남북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전단 살포가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민간 단체의 전단 살포 움직임이 계속되자 전단 살포 예방과 사후 처벌 대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까지 나왔다.
전후부터 1970년대까지 집중됐던 납북사건은 납북자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에게도 심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와 고통을 줬다. 우리 사회는 납북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을 감싸주고 고통을 위로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랫동안 감시와 차별의 눈길만 보냈고, 공직 취업 제한 등의 각종 불이익을 안겼다. 납북자 가족에게 연좌제라는 국가 폭력이 가해진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다. 그들은 북한에 의해 가족을 잃었고 남한의 반공주의 정책에 의해 2차 피해까지 본 셈이다.
지금 남북 상황을 볼 때 납북자의 생사 확인이나 송환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납북자 가족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위로다. 그 고통에 공감하고 아픔을 나누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그들의 외침에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건 납북자 문제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아들을 북한에 빼앗긴 구순 노모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아니면 대통령의 대리인이라도 나서 그들에게 대통령의 위로를 전했으면 한다. 국민주권정부에서 상상하기 힘든 장면도 아니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18일 06시0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