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북한이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에 호응해 대남 방송을 멈췄다고 한다. 11일 오후 2시부터 대북 방송을 중지한 후 같은날 밤부터 일부 접경지역에서 시끄러운 소음방송 대신 노랫소리가 들렸는데 12일 0시부터는 모든 접경지에서 대남방송이 사라졌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그동안 소음 때문에 밤마다 잠을 설쳤던 접경지 주민들이 간밤에 모처럼 단잠을 잤다는 소식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정권 교체를 실감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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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12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 지역에 설치된 대북 방송 확성기 관련 군사 시설물. 2025.6.12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자녀들을 위해 한 엄마가 무릎을 꿇었다. 인천 강화군 주민들이 국감 참고인으로 출석해 대남 소음방송으로 인한 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뒀다는 한 참고인은 "성장기 아이들이 잠 못 자고 힘들어하고 하는 게 가슴이 아프다"며 국감장 바닥에 무릎 꿇고 도움을 호소했다. 그는 "제발 탈북민 단체들이 와서 (전단이나 쌀 등을) 못 보내게 해달라. 보내고 나면 (대남) 확성기 소리가 3∼4배 커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고인은 "평양에 드론(무인기) 전단이 떨어진 이후로 소리가 3배는 더 커졌다"라고도 했다.
접경지 주민들은 대북·대남방송을 동시에 중단할 것을 요구해왔다. 대북 전단 살포로 대남 오물 풍선이 날아들고 대북 방송이 대남 방송으로 이어진다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달라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 당시인 지난해 6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등에 대응하는 차원이었다. 대북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각종 기괴한 시끄러운 소리를 동원해 대남 방송을 키우는 식으로 맞대응했다. 앞서 북한은 오물 풍선 부양 도발을 하면서 남측 민간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와 이를 막지 않는 '남측 당국'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남북 간 '대응과 맞대응'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과정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비로소 악순환 고리를 끊는 조치들이 선제적으로 취해졌고, 일단 남북 긴장 완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9일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지를 요청한 데 이어 이틀 만에 대북 방송까지 중지하자, 북한이 호응해 남북 간 '접경지 심리전'이 휴전 상태에 들어간 모양새다. 북측이 별도 입장을 표명하지 않아 속단은 이르지만 실질적인 상호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물론 북한이 2023년 말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대남 단절 조치를 지속해왔기 때문에 섣부른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새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을 좀 더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이유는 많다. 안보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북 억지'에서 '중국 견제'로 유연하게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준비하는 상황이다. 주한미군 감축까지 거론된다. 앞으로 한미동맹을 축으로 한 대북 억지 체제에서 우리의 역할과 책임이 더 커질 공산이 크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남북 강대강 대치와 긴장 고조는 양측의 고비용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국방비 증액 등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경제나 재정 여건으로는 그것을 감당하기가 벅차다.
싸우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 최선의 안보라고 한다.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평화적 공존을 모색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군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군대가 아닌 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북 유화 제스처들이 남북 관계 개선의 실질적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당국의 정교한 후속 대응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당장 납북자 가족단체가 이달 14일부터 임진각 일대에서 대북 전단 살포 행사를 강행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12일 15시51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