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머무른 시간은 약 일주일이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관광지가 아닌 도시 어디에나 있던 크고 작은 공원이었다. 정말이지 공원은 어디에나 있었다. 빈 응용미술관(MAK) 옆에도, 도심을 잇는 트램과 철도의 정거장에도, 아파트와 주택 앞에도…. 공원이 얼마나 많은지 구글 지도를 켜면 이 녹색 구역을 가로지르는 길로 안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빈(419㎢)은 서울(605㎢)보다 작다. 거주 인구도 서울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녹지 비율은 전체 도심의 절반을 넘는다. 인구밀도가 낮은데도 공원에는 서너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가 최대치로 놓여 있었다. 거의 모든 산책로를 빙 둘러,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을 때까지 길게. 덕분에 중간중간 의자에 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 어디를 가도 확실한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지.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지루할 새가 없었다.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고, 부모는 아이들을 풀어놓은 채 잠시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청년들은 웃통을 벗은 채 공차기를 하고, 연인들은 그늘 아래 달콤한 시간을 갖고. 목줄을 풀 수 있는 개 전용 쉼터도 따로 있었다. 그런 풍경을 가만 바라만 봐도 삶을 긍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비교와 경쟁으로 일상을 잠식당하는 위험에서도 공원은 훌륭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시민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빈 시정부의 각별한 노력도 인상적이었다. 현지인들의 생활을 엿보는 투어를 제공하는 ‘레벨투어스비엔나’의 세바스티안 대표에 따르면 빈 시민 4분의 1이 공공임대주택에 산다. 많은 이들이 ‘평범한 집’에 사니 집의 격차 때문에 상실감과 패배감을 안고 사는 사람도 그만큼 적다. 임대주택이라고 해서 못생기지도, 초라하지도 않다. 일상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꼭 베란다를 넣고 크고 작은 공원을 필수적으로 배치한다. 지상은 차 없는 도로로 만들어 아이들을 편하게 뛰놀게 하고, 집을 찾는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단지 내에 호텔까지 만들어 넣는다.
이 모든 도시 행정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시작됐다. 하루 12, 13시간을 일하고 집은 태부족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교통, 주택, 도심 환경에 걸친 비전 실험을 시작했고, 대다수가 행복한 양질의 일상을 만들어냈다.
세바스티안의 말이 생각난다. “빈에 살아서 행복해요. 유럽의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집값도 저렴하고 물가도 낮아요. 어디에나 잘 관리된 공원과 아름다운 건축이 있고요. 임대주택에 살아도 계속 창의적인 사람으로 살 수 있어요. 빈의 공공환경은 정말 최고입니다.” 실제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뽑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 빈은 3년 연속 1위에 이름을 올렸다.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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