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는 진실한 노래와 예술로 좋은 세상 만들 책임 있죠”

2 days ago 1

서울대 교수 임용 세계적 테너 바르가스

최근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돼 올해 1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한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테너 라몬 바르가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만 20개 이상의 오페라에 230회 이상 출연하는 등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활약해온 그는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한국 성악도들에게 정통 오페라 발성을 지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최근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돼 올해 1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한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테너 라몬 바르가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만 20개 이상의 오페라에 230회 이상 출연하는 등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활약해온 그는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한국 성악도들에게 정통 오페라 발성을 지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멕시코의 라몬 바르가스(65)는 현 시대 대표 리리코(서정적) 오페라 테너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92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를 대신해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에드가르도 역으로 출연하며 세계적 테너 반열에 올랐다. 이후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등 세계 정상의 오페라극장에서 주연 테너로 활약했고, 메트로폴리탄에서만 20개 이상의 오페라에 230회 이상 출연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가 서울대 강단에 섰다.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돼 첫날 레슨을 마친 그를 4일 눈 내리는 서울대 음대 교수실에서 만났다. 그는 “아름다운 소리를 타고난 한국 성악도들에게 정통 오페라 발성을 지도하고 싶다”며 의욕을 나타냈다.

―서울대 임용 제안을 받고 응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지난해 서울대 성악과의 서혜연 교수가 연락을 해오셨어요. 서울대에서 교수 임용을 위해 세계 유명 오페라극장과 접촉해서 성악가들을 추천받았는데 논의 결과 제가 1순위였다고 하셨죠. 제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놀라워 하면서 ‘아직 현역으로 여러 무대에서 노래를 하시는데 오실 수 있느냐’고 하시더군요. 저는 예전 빈 국립음대에서 강의하면서 전 세계 무대에 서기도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밝혔고, 지금 이곳에 있게 됐죠. 2월 28일에 도착했으니까 이제 나흘 됐어요.. 아직 학교를 많이 돌아보지 못했지만 첫 인상은 너무 좋습니다. 누구나 저를 따뜻하게 환영해주는 분위기를 느껴요.”

한국 학생들, 가르침에 마음 열려 있어
19세기 초 ‘벨칸토’ 전통 깊이 공부해야

파바로티 대신 출연 ‘메트’ 갈채 못잊어
홍혜경-조수미-연광철과 오페라 출연

자기 한계 아는 것이 진실된 배움 기초
고국 멕시코 열정적인 노래 전통 유지
―먼 나라의 낯선 환경으로 오시는 데 주저함은 없었을까요.

“예전 한국에도 온 적이 있고 일본에도 온 적이 있어서 동아시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일본 문화는 전통적이면서 약간 ‘닫혀’ 있는데 반해 한국 문화는 한층 더 개방되었다는 느낌도 받았었죠.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무대에 적게 서는 편이기 때문에 이제 내 호기심을 끄는 곳이라면 어디나 가서 성악 예술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특히 아시아에서 성악에 대한 관심과 역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가는 제안이었죠.”

―가족들은 함께 왔나요.

“저는 늘 혼자서도 전 세계를 다녔고 가족들도 각자 자기의 주변과 얽혀 있어 함께 거처를 옮기기란 쉽지 않죠. 이번에 혼자 왔지만 대신 가족들이 자주 놀러 오기로 했어요. 가족들이 한국 여행에 대해 굉장히 기대가 큽니다.”

―한국에 오신 지 며칠 안 됐지만 한국 음식은 많이 드셨나요. 어떠셨나요. 멕시코인들도 매운 음식을 많이 드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웃음) 멕시코의 매운 맛과 한국의 매운 맛은 어느 쪽이 맵다기 보다 그 매운 성격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두 가지 매운 맛 다 좋아요. 한국 음식은 무겁지 않은 느낌이어서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아요.”

―빈 등에서 강의할 때 한국 학생들도 가르쳤나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아름다운 소리를 타고난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인들은 베르디나 푸치니, 또는 푸치니와 같은 시대의 베리스모(현실주의) 오페라에 관심이 많죠. 만약 한국인들이 19세기 초반, 도니체티나 벨리니 시대의 이른바 ‘벨칸토’ 창법을 더 깊이 배운다면 더 좋은 성악가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벨칸토 창법에는 오페라 발성의 기본이 들어있기 때문이죠.”

―한국 성악가들과도 자주 공연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에서 소프라노 홍혜경과 푸치니 ‘라보엠’을 함께 했고 조수미와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베르디 ‘리골레토’를 했죠. 베이스 연광철과는 드레스덴에서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를 함께 했는데 정말 인상 깊었어요. 모두 열정적이고 진지한 최고의 가수들이죠. 한국에는 특히 좋은 드라마틱(극적) 바리톤이나 베이스가 많아요.”

―서울대에 와서 만난 한국 성악도들에 대한 느낌은 어땠나요.

“오늘(4일) 처음 레슨을 시작했죠. 조금 전에 최은식 서울대 음대 학장님과도 말씀을 나눴지만 학생들이 배우는 것에 대해 자세가 굉장히 열려 있더군요. 대체로 성악가들은, 어린 학생들이라고 해도 자기가 노래하던 습관을 바꾸기가 힘들어요. 성악을 시작한 뒤 제법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신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발성 등 방법들을 고수하기 마련이고, 선생이 바꾸라고 조언을 해도 처음엔 잘 되지 않으니 그 조언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의심을 갖기 쉽죠. 이해할 만 해요. 자기 악기를 남의 손에 맡기는 일이잖아요. 100% 믿음을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런데 오늘 만난 학생들은 지금까지 봐온 학생들보다 훨씬 더 자세가 개방돼 있고 제가 조언하는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어요. 굉장히 느낌이 좋습니다.”

―플라시도 도밍고를 비롯해 프란시스코 아라이사, 롤란도 비야손 등 멕시코 출신의 명가수, 특히 명테너가 많습니다. 멕시코인들에게는 멋진 노래의 전통이 있는지요.

“도밍고의 경우는 여덟 살 때 멕시코로 이주해 성인이 될 때까지 멕시코에서 성장했지만 스페인에서 태어났죠. 물론 자신은 멕시코인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멕시코인들도 그를 멕시코인으로 생각합니다.

멕시코인들은 노래를 좋아해요. 멕시코에는 ‘마리아치 밴드’라는 대중음악 전통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다들 축제에서 마리아치 노래를 부르죠. 미국식 팝음악과 달리 호흡을 최대한 사용해서 아주 크게 발성을 하기 때문에 클래식 성악 발성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좋은 발성에 대한 천부적인 본능이 있는 셈이죠.

남자들은 사춘기 때부터 좋아하는 여성이 있으면 그 집 창가에 가서 로맨틱한 영화 장면처럼 기타를 들고 세레나데를 부릅니다. 대부분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이 함께 가서 노래를 불러요. 저도 다섯 명으로 된 그룹에 끼어서 세레나데를 불러주곤 했죠. 밤 열두 시에 창가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그 이웃들이 화를 내지 않습니다. ‘아, 지금 사랑을 고백하는구나’ 하고 이해해 주죠. 여자친구한테만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멕시코 남자들은 엄마 생일에도 기타를 들고 세레나데를 불러줍니다.”

―지금까지 출연한 많은 무대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여러 무대가 기억나지만 아무래도 가장 강렬한 기억은 맨 처음 성악가로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억이죠. 데뷔는 멕시코에서 데뷔했는데 그 얼마 뒤인 1986년에는 ‘2년 뒤 스위스 루체른에서 출연할 수 있도록 계약하자’는 제안이 왔어요. 그 때 기억이 선명합니다. ‘내가 평생 노래를 하면서 생활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이 처음 들었거든요.

1992년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출연하기로 예정됐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도 생생해요. 청중들은 기대했던 파바로티가 나오지 않아 의구심이 많았을 텐데 마지막에 관객 전체가 일어나 갈채를 보내줬죠. 환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파바로티도 만났는데, 그가 출연을 사양한 실제 이유는 연출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파바로티도 제게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셨죠. 그 뒤 메트에서는 20개 이상 역할로 230회 이상 출연했죠.

어릴 때 읽은 책도 나이 들어 다시 읽어보면 그 느낌이 바뀌듯이, 요즘은 작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던 극장들이 자꾸 새롭게 떠오릅니다. 1992년인가, 이탈리아 동부 아스콜리피체노라는 작은 도시의 조그마한 극장에서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네모리노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정말 작은 극장이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즐기면서 공연을 했어요. 요즘은 그런 경험들이 더 귀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성악가로서 롤모델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제 롤모델은… 음, 몇 분이 섞여있어요. 테너 아우렐리아노 페르틸레(1885~1952)의 고귀함, 주세페 디 스테파노(1921~2008)의 섬세한 감정 표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테크닉. 이 세 가지를 합하면 딱 제가 이상으로 삼는 테너가 될 것 같군요.”

―2015년 소프라노 홍혜경과의 듀오 리사이틀을 위해 내한했을 때 인터뷰에서 후배 성악가들에게 주는 충고로 ‘발성을 확실히 익힐 것, 진지하게 성악을 대할 것, 머리를 잘 써서 자기의 한계를 빨리 파악할 것’을 꼽았습니다.

“자기의 한계를 아는 것은 성악가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면 그 다음 단계의 배움에 있어서 더 진실되게 다가갈 수 있죠. 제 스승님 중 한 분이 ‘배우는 걸 그만두는 순간 추락하는 거다. 나이 들어서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 일은, 성악은 진정한 정열을 갖고 해야 되는 일이에요. 늘 학생들에게 얘기하죠. ‘돈을 벌고 싶어서 성악을 하면 안된다. 정말 열심히 했을 때 명성과 돈이 따라오는 거다. 지금 당장은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순간에 진심을 다해야 성악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요. 이름이 생각이 안 나지만 어느 소설가가 쓴 글이 기억납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길은 없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 자체가 행복이다’라는 문장이었어요. 성악에 정진하는 것 또한 그와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이 가진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진실한 예술, 음악, 노래는 사회도 좋은 사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올해도 독일 본 오페라에 푸치니 ‘토스카’ 카바라도시 역으로 출연하는 등 여러 오페라와 리사이틀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한국 무대에 서실 예정은 없으신지요.

“어느 해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한국에서 ‘호프만의 이야기’에 출연해달라는 제안이 왔었어요. 제 기존 일정과 맞지 않아 응하지 못했죠. 이제 한국에 머물고 있으니 좋은 기회가 온다면 꼭 하고 싶습니다.”

테너 라몬 바르가스

△1960년 9월 11일 멕시코 멕시코시티 출생
△1982년 멕시코 몬테레이서 데뷔
△1986년 이탈리아 카루소 콩쿠르 우승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 학교에서 수학
△1992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대타로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에드가르도 역 맡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로열 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빈 국립오페라 등 주역 테너
△1993년 이탈리아 라우리볼피 상, 2000년 영국 오페라 나우 선정 올해의 아티스트, 2001년 독일 에코 클래식 올해의 가수상, 오스트리아 페스티벌(Festspiele) 매거진 선정 세계 최고의 테너 수상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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