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와 초연결 시대, 왜 '뇌'인가
우리 사회는 퇴행성 뇌질환과 정서질환, 행동 중독까지 뇌 관련 문제에 전 연령대가 노출돼 있다. 치매 환자는 지난 2023년 약 96만명에서 오는 2050년에 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치매환자 관리 비용도 연간 약 23조원으로 GDP 약 1%를 차지했다.
또,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인 중 40%는 치매가 암보다 두렵다고 인식한다. 지난 202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실태조사 결과, 청소년 43%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치매를 비롯한 퇴행성 뇌질환과 우울증·중독 같은 정서질환 증가는 개인 삶은 물론 사회·경제 전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급속한 고령화와 초연결 사회가 만든 뇌 건강 위기 속에서, 뇌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기술은 이제 학문을 넘어 산업과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문제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이 지난 수십년간 국가 성장의 핵심축이었다면, 이제 또 하나의 거대한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뇌과학, 연구 단계를 넘어 산업 영역으로
'뇌산업'은 인간의 인지와 감정, 행동을 이해해 치료와 기술, 산업으로 연결하는 미래 산업이다. 고령화와 디지털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시점에서 뇌산업은 보건의료를 넘어 산업 구조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전략적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늘 미지의 영역을 향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심해와 우주를 향했던 인간의 탐구심은 이제 가장 가깝고도 먼 곳, 바로 우리의 머릿속 '뇌'로 향하고 있다. 약 860억개의 신경세포가 연결된 인간의 뇌는 생각과 감정, 행동을 조율하는 '작은 우주'다.
무게는 고작 1.4kg 남짓이지만, 뇌는 매 순간 수십억 개의 신호를 처리하며 우리가 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움직이도록 만든다. 이 놀랍도록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시스템은 오랫동안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 왔으며 뇌를 닮은 방식으로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오늘날 인공지능(AI) 발전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특히 약 20와트(W)에 불과한 전력으로 사고와 기억, 감정, 의사결정, 운동 조절까지 해내는 인간의 뇌는 현존하는 어떤 기계보다도 에너지 효율적인 정보 처리 장치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 고도화가 뇌산업 생태계를 이끈다
첨단 생체분자 분석기술과 초고해상도 뇌영상 기술, AI 기반 데이터 분석기술 발전은 이러한 뇌의 정교한 작동 원리를 실제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관찰과 가설에 의존하던 뇌 연구는 이제 데이터 기반의 정밀 분석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 결과 뇌의 구조와 기능, 신경회로 작동 메커니즘이 빠른 속도로 해독되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 성과는 뇌질환 치료 기술과 뇌기능 조절 기술, 나아가 뇌의 작동 원리를 응용한 다양한 기술로 이어지고 있다. 뇌과학은 연구실을 넘어 의료와 산업, 일상의 혁신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됐다.
이러한 변화는 곧 뇌산업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뇌연구 성과가 더 이상 실험실에 머무르지 않고 예방, 진단, 치료 기술 개발로 이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과 서비스로 확산되어 새로운 산업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미래 신성장될 세분야 주목
첫째, 치매와 우울증 등 뇌질환 극복을 위한 의약품 분야다. 치매와 파킨슨병, 우울증 같은 뇌질환은 고령화와 사회 환경변화 속에 급증하면서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 재정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치매를 '국가 재난' 수준으로 인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따라 혁신 신약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최근에는 고속 스크리닝(HTS)과 AI 활용 약물 탐색·발굴 기술이 도입되면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됐던 뇌 신약 개발의 한계를 점차 극복하고 있다. AI는 방대한 화합물과 생물학적 데이터를 분석해 유망 후보 물질을 빠르게 도출하고, 임상 실패 가능성도 사전에 예측함으로써 신약 개발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둘째,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한 뇌기능 조절장치 분야다. 이 영역에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포함해 전자약, 디지털 치료기기, 신경 오가노이드(neural organoid) 등이 포함된다. 뇌 기능을 직접 조절하는 의료기기는 기존 약물 중심 치료의 한계를 보완하며, 신경계 질환 치료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의료 현장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와 모바일 기반 디지털 치료기기(DTx)는 일상에서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를 가능하게 하며, 의료 접근성과 치료 순응도를 향상시키고 있다. 2023년 불면증 치료용 '솜즈(Somzz)'가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로 승인된 뒤 약 2년 만에 불면증·우울증·경도인지장애 등을 대상으로 총 12개 디지털 치료기기가 허가되며 우리나라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본격 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셋째, 뇌의 작동 원리를 다른 산업에 접목한 융합 분야다. 이 영역은 뇌를 직접 자극하거나 치료하는 것을 넘어, 신경계의 정보 처리 방식과 학습 원리를 모방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인간의 뇌를 모방한 AI와 하드웨어적으로 구현한 뉴로모픽 반도체, 로봇 제어 시스템에 뇌 신경 가소성과 학습 원리를 이식하는 뉴로로보틱스, 설문조사 대신 뇌파(EEG)나 시선 추적(Eye-tracking)을 통해 소비자의 무의식적 선호도를 분석하는 뉴로마케팅은 이러한 접근의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뇌과학 성과는 보건의료 경계를 넘어 교육, 제조, 국방, 문화 등 산업 전반으로 지평을 넓히며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뇌산업이 단순히 질병 치료를 위한 의료 산업에 머물지 않고, 전 산업의 혁신을 촉발하는 '신성장 융합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글로벌 뇌산업 경쟁에에 K바람 일으켜야
글로벌 뇌산업을 둘러싼 경쟁은 이미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BCI를 중심으로 핵심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국가간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은 막대한 민간 자본을 앞세워 BCI 기업에 2조원 이상 규모를 투자하며, 임상 성공과 시장 진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중국 역시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BCI 산업 혁신 발전 계획을 추진하는 등 국가 주도 산업화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뇌산업 시장은 약 231조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뇌산업은 이제 실험실을 넘어 본격적인 산업 단계로 접어들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뉴럴링크(Neuralink)는 2024년 '텔레파시(Telepathy)'라는 이름의 BCI 칩을 인간 뇌에 이식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하고 온라인 체스를 두는 모습을 생중계하며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뉴럴링크는 향후 5년 이내 연간 2만 명에게 BCI 칩을 이식하고 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뇌산업 기술혁신과 시장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자약과 뇌질환 치료 기술을 중심으로 관련 기업들이 의미 있는 산업화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와이브레인은 세계 최초로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택 기반 우울증 전자약을 개발, 상용화했으며 헤어밴드 형태의 처방용 전자약 '마인드스팀'을 통해 비침습 뇌신경 조절 기술의 임상 적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 제품은 현재 누적 처방 건수 37만건을 돌파하며 전자약의 실제 의료 현장 안착 가능성을 보여줬다.
침습형 BCI 기술을 선두에서 개발하고 있는 지브레인은 202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한국 최초 뇌이식 의료기기 임상 허가를 획득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특히 초박막·고유연 피질 전극인 '핀 어레이(Phin Array)'와 이를 활용한 완전 이식형 뇌신경 자극기 '핀 스팀(Phin Stim)'은 기존 뇌심부자극술의 한계를 극복하며 뇌전증과 파킨슨병 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다.
뇌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남은 과제는?
이처럼 주요 국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뇌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해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뇌산업을 국가 미래 경쟁력의 새로운 엔진으로 육성하기 위해선 기술의 파편화를 극복하고 산업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의 뇌연구 지원 체계를 구축했으며, 2021년에는 뇌산업을 '뇌연구에 따른 기술이 적용된 제품과 서비스 산업'으로 정의하며 정책적 범위를 넓혔다. 이는 뇌연구를 연구개발(R&D)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는 R&D를 넘어 산업화로 연결하는 실행 전략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국가 차원의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부처·기능별로 분절된 정책을 통합하고, 정책 수립부터 법·제도 정비, 기술혁신 지원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기 위한 '뇌산업 진흥원'과 같은 전문 지원·육성 전담 기관 설치, 운영이 필요하다.
특히 국가 차원의 뇌산업 기술지원 플랫폼을 통해 AI, 소프트웨어(SW), ICT가 결합된 뇌질환 극복 기술과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을 원스톱으로 지원해야 한다. 개발 단계부터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종합적인 서비스 지원 체계를 갖춘다면, 한국 뇌기술이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든든한 바탕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연구 성과가 시장 가치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R&BD 생태계 조성도 중요하다. BCI, 브레인칩, 뉴로모픽 반도체 등 시장성이 높은 핵심 유망기술 개발에 민관 투자를 집중하고, 기술 개발을 넘어 연구실의 우수한 성과가 기술 스핀오프를 통해 창업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즈니스 모델 수립부터 시장 분석, 투자 유치, 규제 대응까지 지원함으로써 스타트업이 지속 가능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뇌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인재 양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뇌산업은 신경과학, 의학, 공학, 정보기술 등 여러 분야의 전문성이 다학제로 연결돼야 하는 만큼, 단일 전공 인력만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체계 개편과 현장 중심의 연구·산업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다학제 융합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뇌기술 및 뇌산업 전문 인력 양성도 함께 포함돼야 할 것이다.
뇌산업, 미래를 여는 전략이 절실하다
뇌산업은 단순한 보건의료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산업구조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초고령사회 대응과 미래 첨단기술 경쟁의 핵심축이 될 것이다. 뇌산업은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토대로 AI 인프라, 임상연구, 산업화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한 R&D 투자 확대를 넘어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과 기술 사업화 촉진, 인재 양성,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협력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현재 추진 중인 뇌산업 협의회를 중심으로 산업 현장 목소리가 정책에 신속히 반영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분명한 의지와 과감한 정책 결단이 뒷받침될 때, 대한민국은 뇌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 pgsuh@kbri.re.kr

2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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