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 칼럼] 코스피 5000시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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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칼럼] 코스피 5000시대의 조건

증시 측면에서 보면 일본 최장수 총리인 아베 신조와 이재명 대통령은 묘하게 닮은꼴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주말자에 “이재명 랠리가 아베노믹스를 연상케 한다”고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는 5층 집무실에 닛케이225지수 전광판을 설치할 정도로 주식시장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지수 상승률이 총리 재임 기간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상승률 상위 총리 20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2년7개월이었는데, 하락률 상위 10명의 재임 기간은 1년4개월에 불과했다. 의회 해산 시기까지 증시 상황을 살핀 그에게 증시는 정치적 승리의 바로미터였다.

아베 전 총리는 2012년 말 취임하자마자 통화정책, 재정정책, 구조개혁으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닛케이225지수는 이듬해 56.7% 급등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와 거버넌스 코드를 정비했고 일본 중앙은행과 공적연금(GPIF)은 일본 주식 투자를 늘렸다. 우리가 벤치마킹하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시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증시 생리를 ‘빠삭하게’ 꿰뚫고 있다는 평가다. 자신을 ‘휴면 개미’라고 부를 정도로 투자 경험도 풍부하다. 첫 주식을 작전주로 시작해 비참한 종말을 지켜봤고 선물·옵션까지 투자하다가 전세보증금만 남기고 전 재산을 날린 적도 있다. 경기지사 취임 전인 2018년 3월까지만 해도 KB금융, SK이노베이션 등 13억여원어치 주식을 보유한 ‘왕개미’였다.

증시에 대한 이런 깊은 관심은 이 대통령 취임 후 국내 증시 분위기를 확연히 바꿔놨다. 올해 코스피지수는 30% 가까이 오르며 주요 증시 중 세계 1위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재노믹스’와 밸류업에 거는 기대가 작용한 결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지난 13년간 닛케이225지수가 3.8배 오른 원인을 단순히 양적 완화나 밸류업 정책만으로 보기엔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다. 주가는 주당순이익(EPS)과 주가수익비율(PER)의 함수다. PER은 국가별로 다르고 크게 바뀌지도 않는다. 이 기간 일본 증시 PER은 평균 15.7배로, 11.6~18.3배(코로나19 시기 제외) 사이를 오르내렸다. 증시를 이끈 것은 기업 실적 개선이었다.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74조3500억엔으로 2012년 대비 2.3배, 순이익은 56조3200억엔으로 4.1배 급증했다. EPS 역시 3.4배로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엔저 기조를 유지하면서 기업이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 기반을 마련할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의 롤모델인 산업경쟁력강화법을 2013년 제정해 산업 재편을 촉진했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철폐해 일본 기업들이 혁신과 성장의 길로 나아가도록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첫 기자회견에서 지난 한 달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주가 상승을 꼽으며 “코스피 5000시대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서막이 열렸다”는 한 투자전략가의 전망대로, 역대 최고 PER(14.2배)을 적용할 경우 3710선까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현 예상 실적으론 절대 만만치 않은 지수다. 주력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아직 수치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코스피 5000시대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일시적 수급으로 오르는 주가는 언제든 거품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기업 실적이 구조적으로 우상향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올 하반기 시장은 끊임없이 그 가능성을 의심하고 타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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