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잘되고 못되고는 접어두고, 술동이 앞에서 건강 과시하며 한번 즐기시지요.
주옥은 분명 귀하의 말과 글로 이루어지고, 산천은 오히려 귀하의 정기를 통해 더 잘 드러났을 터.
술에 기댄 제 말이 경솔하다 탓하지 마오. 한때는 문장 들고 찾아뵌 적도 있었지요.
(粉署爲郎四十春, 今來名輩更無人. 休論世上昇沉事, 且鬪樽前見在身.
珠玉會應成咳唾, 山川猶覺露精神. 莫嫌恃酒輕言語, 曾把文章謁後塵.)
―‘연회에서 유우석께 드리다(석상증유몽득·席上贈劉夢得)’ 우승유(牛僧孺·820∼848)
선배에 대한 시인의 예우가 깍듯하다. 말과 글은 주옥같고, 정신은 자연의 정기(精氣)처럼 소쇄(瀟灑)하다. ‘지금껏 명사 중에 그대 같은 분 더 없었다’는 극찬을 쏟아낸 이유다. 상대가 정치적 박해로 20여 년간 지방관으로 떠돈 이력을 알고 있기에, ‘세상사 잘되고 못되고는 접어두고’ 맘껏 취해 보자고 주흥을 돋운다.
회남(淮南) 절도사이던 시인이 유우석(劉禹錫)을 위해 주연을 베풀며 바친 시다. 청년 시절 시인은 과거를 앞두고 당시 감찰어사이던 유우석을 찾아 자신의 시를 한 번 봐달라고 청탁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간알시(干謁詩·명사나 고관을 처음 만날 때 바치는 시)’였다. 유우석은 햇병아리 선비와의 만남을 잊었을지 몰라도 무명의 후배는 그 인연을 고이 간직해 온 듯하다. 자신의 찬사가 술자리 허언이 아니라는 후배의 첨언(添言), 자기보다 직위가 높은 후배의 이 언사가 외려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몽득은 유우석의 자(字).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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