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 샀을 때 허무주의 스며든다면… 無가 낫다는 ‘정신승리’[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5 hours ago 1

니체의 허무주의에 대한 오해
타인 혐오-자기 연민 합쳐져…‘無에의 의지’ 허무주의 나타나
약자는 타인 악하다 낙인찍어…선악의 위계 바꾸고 위선 구축
허무는 불행의 결과 아닌 씨앗…타인 성공 축복할 때 허무 극복

허무주의를 표현한 폴 머워트 ‘The Nihilist’(1882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

허무주의를 표현한 폴 머워트 ‘The Nihilist’(1882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
《우리는 사는 일이 가끔 덧없고 헛헛하다고 느낄 때 허무주의를 말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염세주의가 있는데 의미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삶이 지긋지긋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낫다는 후회가 염세주의를 나타낸다면, 이래 살든 저래 살든 죽는 것은 다 마찬가지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허무주의를 표현한다.》

알베르 카뮈의 44세 때 모습. 그는 애연가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알베르 카뮈의 44세 때 모습. 그는 애연가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실존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이방인’에서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는 죽음을 통해 인간 삶의 부조리를 드러낸다. 이방인에는 세 가지 죽음의 유형이 있다. 어머니의 자연사, 총에 의한 살해, 그리고 사형 집행이다. 원인이야 다르지만 죽음이라는 결과로 보면 다를 바 없다. 미래에서 ‘어두운 바람’이 불어와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 된다면,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용기를 내기 쉽지 않다.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소설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다룬 주제도 인생의 덧없음이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게이샤로 일하는 고마코의 열정과 사랑이 시마무라에게 모두 ‘헛수고’로 보였다.

그 당시 유럽에는 허무주의라는 사조가 유행했는데, ‘신은 죽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언이 유명하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생에 의미가 없다’, ‘사는 게 허무하다’라는 식의 신세 한탄이 아니다. 허무주의는 신이 죽음으로써 유럽의 최고 가치가 무너지는 유럽의 문화현상으로 알려졌지만, 이것은 반만 맞는 해석이다. 허무주의(Nihilism)에서 어원 ‘Nihil’은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허무주의는 무(無)를 지향하는 철학 체계를 뜻한다. 허무주의는 삶의 가치를 무화(無化), 즉 없애려고 한다.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다. 니체는 왜 인간이 무를 욕망하게 되었는지 그 심리를 파헤친다. 여기서 인간이 두려워해야 할 두 가지는 인간에 대한 혐오와 동정이다. 이 둘이 합쳐지면 ‘허무를 지향하는 인간 최후의 의지’, 즉 허무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타인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 더 많이 가진 강자를 부정하게 되고, 동정이 깊어지면 가지지 못한 약자(자신)에 대한 공감이 깊어져 차라리 ‘없는 것’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첫 문장으로 유명한 카뮈의 ‘이방인’ 표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첫 문장으로 유명한 카뮈의 ‘이방인’ 표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니체에 따르면 병자는 ‘무(無)에의 의지’를 통해 가면을 쓰고 건강한 자들에게 복수를 통한 승리를 꿈꾼다. “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너무 많은 불행이 있다”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갖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행복한 자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의 행복에 대해 수치스럽게 여기기 시작한다. 병자의 목적은 몸과 정신이 탁월하게 강한 자들이 자신의 행복을 의심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병자는 원한과 복수심을 통해 타자의 행복을 수치스럽게 만들어 건강, 성공, 강함 등을 가진 것보다 그것을 가지지 않는 것, 즉 무가 유보다 가치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삶에 실패하고 좌절한 나머지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승리한 인간의 모습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 타자의 탁월한 덕(좋음)은 약한 자의 시샘을 불러일으킨다. 약자는 위조지폐를 만드는 기술처럼 타인을 악하다고 낙인찍고 자신을 선하다고 포장해 선과 악의 위계를 바꾼다. 즉, 자신이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한 부, 명예, 권력 등을 악한 것이라고 비방한 다음, 그 반대인 ‘우리만이 선하고 의로운 인간이고, 우리만이 선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고 믿는다.

니체에 따르면 허무주의는 이처럼 강하고 건강한 자를 이기려는 병자와 약자의 복수심, 증오, 시기, 질투 등과 부정적인 감정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허무주의는 모든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누구나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어차피 부자가 될 수 없을 바에야 돈의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이른바 ‘풀(full)소유’보다 무소유가 더 낫다는 식의 상상을 통해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 그러나 부자는 탐욕스럽고 가난한 자신은 자본에 전혀 때묻지 않아 순수하다는 망상은 자기기만이자 정신승리일 뿐이다.

허무주의의 원인이 되는 타인에 대한 혐오와 자신에 대한 연민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남이 잘될 때 축하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자신과 남을 늘 비교하기 때문이다. 시기심이 많은 사람에게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 될 수 있다. 잘난 사람을 깎아내린다고 해서 내가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망해버린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지나친 연민과 동정을 받으려고 애써도 안 된다. 무소유라고 포장해도 실패한 삶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솔직하게 타인의 성공을 축복하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신의 죽음에 따른 ‘결과’로 다루기보다는 왜 인간이 신을 동경하고 원하게 되었는지를 ‘동기’의 차원에서 분석한다. 그래서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더 믿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의 절박함을 이해하려고 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없는 것’을 상상한다고 삶의 의미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더 공허해질 따름이다. 우리는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지나친 상상을 경계해야 된다. 이 세상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죽음과 같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 이미 허무주의는 시작된다. 허무주의는 불행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 불행을 잉태한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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