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내놓은 ‘주주환원 정책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밸류업 압박이 거세지는 국내 증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이 무조건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업종에 따라 설비투자, 연구개발(R&D) 지출 규모 등에 차이가 있는 만큼 밸류업의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상장사의 2023년 말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G20 회원국 중 비교할 수 있는 16개국 가운데 아르헨티나,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낮다. 대표적 밸류업 수단으로 꼽는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도 우리나라는 최하위 수준이었다. 2014년부터 10년간 한국의 평균 배당성향은 27.2%로 가장 낮았다. 영업현금흐름 대비 주주환원 규모에서도 한국은 0.2배로, 튀르키예(0.1배) 아르헨티나(0.1배) 다음으로 저조했다. 하지만 한은은 주주환원을 확대할 경우 기업가치가 올라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며 주주환원책의 영향을 분석했다. 대체적으로 주주환원을 늘리는 게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주주 보호에 적극적인 기업군에서는 주주환원 확대가 기업가치 제고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시설투자, R&D 등 기업의 자본적 지출이 성장의 핵심인 정보기술(IT) 업종 등에서는 여유자금을 주주환원에 지나치게 사용하면 오히려 기업가치를 떨군다고 지적했다. 활발한 투자활동이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만큼 투자가 중요한 밸류업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성장성이 낮은 금융업종은 배당 확대가 국내외 투자자를 유인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분석했다.
주총 시즌을 맞아 고배당,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는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성장’을 외치는 마당에 밸류업을 위해 고배당을 하라는 건 자칫 ‘황금알을 낳는 닭’의 배를 가르는 것일 수 있다. 우리 주력인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은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와 맞바꾼 주주환원은 순간 달콤할 순 있어도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기업 성장을 포기하고 큰 자본이득을 날려버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