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에너지 안보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민감국가 리스트(SCL)’에 한국을 추가한 것을 두고 여야가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핵무장’ 주장이 외교 참사를 불렀다고 비판한 반면 국민의힘은 잇단 탄핵과 민주당의 ‘친중반미 노선’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이유를 상세하게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 공격에 유리한 것만 골라 삿대질하기 바쁘다.
핵무장 주장 탓으로 돌린 것만 해도 그렇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깨고,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해 제재를 받아야 핵무장이 가능하다”며 “허장성세”라고 했다. 여권에서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핵잠재력 확보가 나오는 것은 미·북 간 북한 핵보유국 지위 인정, 핵 동결과 대북 제재 해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등을 맞바꾸는 경우를 가정한 핵균형 차원이다. 미국의 핵우산이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판에 ‘북핵보유국’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 안보는 핵 앞에 무방비로 서 있게 되는 만큼 방파제를 쌓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핵무장론도, 핵잠재력 확보도 대미 협상 카드로 활용하거나 미국의 동의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일본도 1980년대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핵잠재력을 확보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무작정 핵무장을 꺼내 위기를 초래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정략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에서도 핵잠재력 필요성이 제기되는 마당 아닌가.
국민의힘도 민주당만 몰아세울 것이 아니다. 핵무장 주장이 타당성이 있더라도 미국의 비확산 정책과 상충할 소지가 없도록 정교한 준비와 설득 노력을 병행했어야 했다. 확장억제를 한층 강화한 바이든 행정부 말기 SCL에 한국을 추가한 것은 계엄 이후 한국 정세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고, 대통령과 여권도 책임이 무겁다. 이제부터라도 여야는 공방만 벌일 게 아니라 SCL에서 한국 제외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 싸우면 싸울수록 민감국가에서 풀릴 길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