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대표 빅테크인 테슬라와 22조7648억원(165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맺어 주목받고 있다. 작년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7.6%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으로 단일 고객사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 계약이다. 적자 늪에 빠진 삼성의 파운드리 사업이 테슬라라는 확실한 거래처를 확보함으로써 마침내 도약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게 시장 평가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메모리 분야 주도권 경쟁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비밀 유지를 이유로 계약 상대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SNS에 삼성과의 협업을 공식화하면서 계약의 전모가 드러났다. 머스크는 “삼성의 텍사스 대형 반도체 공장은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 생산 전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라며 “실제로는 (계약 금액이) 그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2033년까지 165억달러어치 반도체를 공급받는 당사자가 계약액을 더 늘릴 수 있다고 밝힌 것이어서 더욱 고무적이다.
삼성의 테슬라 칩 수주는 시장 경쟁력 확보 관점에서 금액 이상의 의미가 있다. 테슬라의 6세대 자율주행(FSD) 칩은 2㎚(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생산될 예정으로, 삼성이 최선단 공정에서 빅테크 고객을 확보할 만큼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AI6 칩이 텍사스 신규 팹(테일러 팹)에서 생산될 예정이라는 것도 긍정적 신호다. 370억달러를 들여 테일러 팹을 건설 중인 삼성은 그동안 수주 부진으로 완공과 가동 시점을 늦춰왔으나 이번 계약으로 투자 관련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빅테크들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원화 전략을 모색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올해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보면 TSMC가 67.6%로 경쟁자 없이 독주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7.7%에 머물렀다. 오히려 중국 SMIC가 6% 점유율로 턱밑까지 따라온 상황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들며 성장해온 게 삼성의 역사다. 인공지능(AI) 붐에 먼저 올라탄 엔비디아, TSMC와 경쟁하는 ‘반도체 왕국’ 삼성전자의 부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