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윤 전 대통령의 기괴한 현실 인식에 국민은 이미 이골이 날 지경인데, 파면 후에도 여전한 비현실적 억지 주장은 또다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윤 전 대통령은 관저 퇴거 메시지에서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며 사실상 정치 행보를 이어갈 뜻을 내비치면서도 국민에 대한 사과나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의 뜻을 담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언사에선 지난 4개월간 나라와 국민에게 끼친 해악과 고통에 대한 일말의 반성은커녕 한때 국가 최고지도자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책임을 회피한 채 자기 위안을 통해 합리화하려는 이른바 ‘정신승리’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오로지 싸워서 이기는 것 외에 어떤 양보도 타협도 몰랐던 검사 출신 대통령은 우리 정치를 황량하게 만들었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이 딛고 바로잡아야 할 자신의 실패마저 부인하며 승리라고 우기는 심산은 과연 무엇인지 씁쓸할 따름이다.
윤 전 대통령을 이처럼 부끄러움조차 모르게 만드는 것은 향후에도 그가 행사할지 모를 정치적 영향력의 곁불을 쬐겠다는 주변 측근이나 정치인들 때문이기도 하다. 윤 전 대통령이 관저를 떠나면서 ‘과잠’(대학교 학과 점퍼)을 입은 청년들과 포옹하는 장면이 연출됐는데, 이들은 대통령실의 요청을 받고 나왔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 주변에 여전히 이런 기획자들이 남아 있고,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그에게 지지 메시지를 애걸하는 현실에선 서초동의 ‘사저 정치’가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윤 전 대통령은 14일 내란 혐의 피고인으로 형사재판에 출석한다. 법원은 그의 지하 주차장 이용을 허가하고 언론의 법정 안 촬영을 불허했다.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됐던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공개 출석하고 법정 촬영도 이뤄졌던 것과는 딴판이다. 구속 기간을 날(日)이 아닌 시간으로 따져야 한다며 구속 취소된 데 이어 윤 전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잇단 예외 조치에 “특혜 아니냐”는 논란이 이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허언만 남은 전직 대통령에게 이제 남은 것은 사법 절차에 따른 엄정한 단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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