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마침표이자 국민적 상처 치유의 시작점 돼야
헌재의 선고일 지정이 반가운 것은 대한민국에 드리웠던 불확실성의 짙은 안개가 걷힐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12·3 비상계엄 이래 한국은 혼란과 불안 속에 요동쳤다. 무장한 군대가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됐고, 현직 대통령의 체포를 둘러싸고 대통령 관저에서 국가기관 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대통령 구속에 반발한 시위대가 법원에 난입하는가 하면 도심 광장에선 연일 탄핵 찬반으로 갈린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 그사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추락했고 리더십 부재의 정부는 각종 대내외 위기 대처에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헌재가 변론 종결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선고기일을 잡지 않은 채 긴 숙고의 시간을 가지면서 세간에는 그 이유를 놓고 온갖 억측이 난무했고 향후 정국에 대한 불안감도 한층 깊어졌다. 정치권에선 여야가 제각각의 기대와 우려 아래 헌재의 기능 정지 사태까지 염두에 두고 거친 충돌을 벼르던 참이었다. 선고가 늦어진 만큼 더욱 충실한 판단 아래 위기의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우고 지난 4개월의 혼란을 수습하는 결정이 나오길 기대한다.
헌재 심판의 핵심 쟁점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과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뤄졌는지, 특히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관위에 군대를 투입한 것이 온당했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그간 국회 측은 “윤 대통령이 민주 헌정질서를 무참하게 짓밟았다” “광인에게 다시 운전대를 맡길 수는 없다”며 신속한 파면을 촉구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폭주야말로 국헌 문란 행위”라며 계엄 선포는 야당에 대한 경고성, 대국민 호소용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사실 계엄의 밤 국민 모두는 TV를 통해 국회에 군용 헬기가 투입되고 무장한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장면을 똑똑히 지켜봤다. 이후 “국회의원을 끌어내라” “체포 대상자들을 잡아서 이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군 현장 간부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의원 끌어내기 지시나 체포 대상자 명단, 국회 활동 금지 포고령 등에 대해 전면 부인하거나 그 의미를 축소했다. 이런 사안들마다 헌재는 엄정한 판단을 내리고 그를 종합해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 결정할 것이다.
물론 헌재 선고가 모든 문제를 일단락 짓지는 못할 것이다. 국민 여론이 극명하게 갈린 터에 모두의 동의를 받기는 어렵다. 다만 헌재 결정은 국가적 혼란에 마침표를 찍고 국민적 상처를 치유하는 시작점이다. 윤 대통령을 포함해 여야 정치권은 그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절대적으로 승복해야 한다. 납득 못 하는 국민을, 지지층을 앞장서 설득해야 한다. 승복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헌재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법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고,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법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지 그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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