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 전력망확충 특별법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등 에너지 관련 주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력망법은 논의 시작 3년 만에, 방사성폐기물법은 무려 9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전력망법은 한국전력이 해오던 전력망 건설 주관을 정부가 맡도록 해 협상력을 높였고, 인허가 절차도 간소화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60일 이내에 주민 의견을 수렴해 회신하도록 하고, 기간 내 회신이 없으면 협의를 거친 것으로 간주해 사업이 마냥 늘어지는 것을 막았다. 고준위특별법 통과로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 2060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할 근거가 마련됐다.
이들 모두 에너지 난제 해결을 위해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법안이어서 차질 없는 이행이 관건이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일부 시민·환경·노동단체가 투쟁을 외치며 발목을 잡을 태세다. 수도권을 위해 지역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반대 논리다. 인공지능(AI) 시대 폭증하는 전력 수요는 수도권-지방 대립이 아니라 국가 대계 차원에서 바라볼 일이다. 전력 수요가 많은 철강·석유화학 등은 지방에 있는데, 무턱대고 지역 갈등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고질적 악습이다. 생태계 파괴와 전자파 위험을 내세우나, 과학적으로 조사하면 될 일이다.
전력망 건설이 환경단체와 주민 반대, 지자체의 비협조로 제동이 걸린 사례는 수없이 많다. 밀양송전탑 하나 세우는 데 6년이나 걸렸고,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데는 장장 21년9개월이 소요됐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에서 확정한 전력망 설치 31곳 중 20곳 넘게 지연되고 있는데, 상당수 주민과 환경단체 반대 때문이다. 전력망은 AI 등 첨단산업 발전을 떠받치는 혈관이다.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면 향후 15년간 송전 설비가 64% 늘어나야 한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첨단산업 국가 대항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전력망 건설에 태클을 거는 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쯤 돌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