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그동안 AI로 인한 고용 충격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던 미국 재계에서도 일자리 대체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2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AI가 말 그대로 미국 사무직 노동자의 절반을 대체할 것"이라며 "많은 사무직이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WSJ은 이 발언이 실리콘밸리가 아닌 미국 대기업 CEO 중에서는 가장 직설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실리콘밸리 외부에서는 그동안 AI로 인한 대량 실업 가능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혁신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식으로 대응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CEO들은 사석에서는 인건비 절감 방안을 논의하며, 자동화 소프트웨어와 AI, 로봇 등을 활용해 업무 효율화를 추진해왔다. WSJ는 AI에 대한 이들의 평가가 매주 달라질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커뮤니티비즈니스 부문 CEO 메리앤 레이크도 지난달 말 "AI 도입으로 향후 몇 년간 운영 부문 인력이 10%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비슷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는 지난달 "생성형 AI와 AI 기반 소프트웨어 에이전트가 업무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라며 "향후 몇 년 안에 전체 사무직 인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언급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픈AI의 경쟁사인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지난 5월 "AI가 향후 5년간 모든 신입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을 없애고 실업률을 최대 20%까지 급등시킬 수 있다"며 "정·재계 인사들이 노동시장에 대한 '사탕발림 같은 발언'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외국어 학습 서비스업체 듀오링고는 AI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계약직 고용을 점차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파이는 직원들에게 신규 인력 채용을 요청할 때 AI로 대체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 제조사 모더나는 직원들에게 추가 인력 없이 신제품을 출시하라고 요구했다.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 피버의 미카 코프먼 CEO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데이터 과학자, 변호사, 판매직 등 당신의 직업과 상관없이 AI가 오고 있다"며 대다수 직업군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인들의 예상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반면, 이러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시각도 있다.
구글 AI 조직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AI로 인한 일자리 종말(jobpocalypse)에 대해 지나친 우려는 필요 없다며, 오히려 AI에 대한 통제 상실을 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픈AI의 브래드 라이트캡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신입 일자리가 대규모로 대체된다는 증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IBM의 아빈드 크리슈나 CEO는 AI를 통해 일부 일자리를 없앴지만, 동시에 프로그래머와 영업직 채용은 늘렸다고 밝혔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