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둘 베테랑 박상현의 양손에는 군데군데 물집이 터지고 피멍이 들어 있었다. 여기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 1년여 전 갑자기 스윙이 무너지며 깊은 부진의 늪에 빠진 그는 지난 7~8월 약 한 달 반 동안 골프 강제 휴식을 취했다. 나쁜 습관을 몸에서 떨쳐내기 위한 그만의 노하우였다. 오랫동안 골프채를 잡지 않다가 하반기 첫 대회를 앞두고 2주간 연습에 몰두한 결과 손에 물집이 잡히고 피멍이 생겼다고 했다.
몸을 완전히 리셋했다는 박상현이 ‘골프 도사’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31일 경기 광주 강남300CC(파70)에서 끝난 KPGA투어 하반기 첫 대회인 동아회원권그룹오픈에서 우승하면서다. 36홀 노보기 행진을 이어가며 2라운드에 단독 선두로 올라선 박상현은 이후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23년 10월 제네시스챔피언십 이후 1년10개월 만의 통산 13승(일본투어 포함 15승)째다.
◇여름 강제 휴식 후 부활한 베테랑
이날 5타 차 단독 선두로 대회 최종 4라운드에 나서 2타를 줄인 박상현은 최종 합계 21언더파 259타를 적어내 2위 이태훈(캐나다)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투어 통산 상금 1위인 박상현은 우승상금 1억4000만원(총상금 7억원)을 더해 통산 상금을 56억5735만원으로 늘렸다.
박상현은 골프 도사로 불린다. 샷감이 좋을 땐 어느 방향이든 원하는 대로 공을 정확히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5년 KPGA투어에 데뷔해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정규 투어 시드를 잃은 적이 없어 ‘꾸준함의 대명사’로도 통한다.
그런데 올 시즌 박상현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앞서 출전한 9개 대회에서 톱10에 단 한 차례도 들지 못했다. 최고 성적은 지난 4월 우리금융챔피언십에서 기록한 공동 22위다. 박상현은 지난해 5월 SK텔레콤오픈 이후 스윙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했다. 그는 당시 최경주와 연장전 끝에 준우승했다.
부진이 길어지자 박상현은 시즌 중 골프 강제 휴식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제아무리 여름 휴식기라고 해도 다른 선수라면 꿈도 못 꾸는 일이다. 박상현은 “30년간 골프를 치면서 쌓인 노하우”라며 “시즌이 끝난 뒤에도 한 달 정도 아예 골프채를 잡지 않고 오직 휴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년을 쉬더라도 눈 감고 공을 맞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웃었다.
◇샷감 되찾고 쾌속 질주
박상현은 완전한 휴식 후 스윙 때의 나쁜 습관을 버리고 예전 감각을 되찾았다고 했다. 자신감까지 붙으니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다. 전날 15번홀(파4)에서도 그랬다. 세컨드샷을 그린 바로 옆 페어웨이로 보낸 박상현은 핀과 거리를 확인한 뒤 캐디에게 깃대를 뽑아달라고 요청했다. 칩인 버디로 마무리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3m 거리에서 웨지로 살짝 띄워 친 볼은 그린 입구에 떨어진 뒤 굴러 홀 속으로 사라졌다. 박상현의 명품 샷을 옆에서 지켜본 갤러리들은 “역시 박상현!”이라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박상현의 샷은 대회 마지막 날에도 빛났다. 전반 2번홀(파4)과 4번홀(파4)에서 세컨드샷을 모두 핀과 1m 안쪽 거리에 붙여 버디를 잡아낸 박상현은 일찌감치 2위권 선수들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몇 차례 위기를 특유의 노련함으로 극복한 그는 이후 타수를 잃지 않은 끝에 리더보드 최상단 자리를 지켰다. 박상현은 “우승도 기쁘지만 스윙이 좋아진 것에 만족한다”며 “어렵게 찾은 샷감을 이어가기 위해 더 집중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