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무사유의 악행[내가 만난 명문장/김민성]

5 days ago 3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중

김민성 시나리오 작가·20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민성 시나리오 작가·20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평소 책보다 영화와 더 친숙한 나는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소설을 영화로 먼저 접했다. 2008년에 개봉한 영화 ‘더 리더’로, 15세 소년과 36세 여성의 비밀스럽고 슬픈 사랑을 그리며 주인공 한나를 연기한 케이트 윈즐릿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한나에게 감정이입하게 했다면, 소설은 일인칭 화자인 미하엘의 이야기로 풀어갔다. 이처럼 동일한 이야기가 다른 매체를 통해 전달될 때, 우리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등장인물들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 소설의 중심에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철학자 해나 아렌트가 제시한 이 개념은 소설 속 한나의 문맹과 맞닿아 있다. 무지와 무사유에서 비롯된 악행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소설 속 한나가 문맹을 극복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과정 또한 아렌트가 강조한 사유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작가의 의도적인 선택이다. 두 사람 이름의 독일식 발음(‘하나’)이 같고 나치 전범과 재판이라는 배경 설정, 그리고 소설 속 한나의 독서 목록에 아렌트의 저서가 등장하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한나의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연일 보도되는 각종 재판들을 보며, 우리는 한나의 재판을 지켜보던 방청석의 미하엘처럼 도덕적 딜레마 앞에 서게 된다. 무지와 무사유가 어떻게 악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 ‘악의 평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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