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든 연출이 늘 저를 봐준 것 같아요. 현장에 가면 세팅이 되어있고, 저는 늦게 나타나 현장에서 막 바꾸는 거예요. 여태 감독들이 다 들어줬어요. 민규동 감독은 달랐어요."
63세, 중견배우 이혜영이 백발의 킬러로 돌아왔다. 영화 '파과'(민규동 감독)를 통해서다.
28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이혜영은 "촬영 내내 불안했고,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1981년 데뷔한 이혜영은 영화 '소설가의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 등 많은 작품에서 강렬한 카리스마와 독보적인 캐릭터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혜영은 '파과'에서 대체 불가의 매력을 선보였다.
구병모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영화다.
이혜영은 "저는 저와 어울린다고 생각지도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조각은 너무 할머니다. 그의 매력은 힘이다. 사실 할머니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상상력이 별로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규동 감독에게 원작 보면 액션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액션영화를 한다고 해서 불안하고, 정말로 겁이 난다고 했다. 그랬더니 '액션 안 해도 돼요'하다가 '액션 좀 넣을까요'하더라. 내가 하는 조각에서 액션이 많지 않아도 할 방법은 있었다. 그런데 하면서 욕심을 내신 것 같다. 기왕이면 찍으면서 점점 더 요구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첫 촬영부터 이혜영은 부상 투혼을 발휘해야 했다. 그는 "2박 3일간 잡혀있는 신이었는데 갈비뼈가 나갔다. 그런데 시간 안에 끝내야 해서 그 상태로 연기했고, 갈비 한 개가 더 나갔다. 그런 순간 이거 몸 망치고 영화 제대로 안 나오면 어떡하지, 불안함과 고독이 말려왔다"고 털어놨다. 이어 "보호대를 착용했지만, 촬영 내내 부상을 계속 입었다. 조깅하는 것만 찍어도 정형외과 가야 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조각은 모든 킬러가 열광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는 전설의 킬러로 ‘대모님’이라 불리고 전설로 추앙받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한물간 취급을 받는다. 자신을 쫓는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등장으로 생애 마지막 방역을 준비한다. 이혜영은 몰입할 수밖에 없는 연기로 시네마를 완성했다.
'파과'를 촬영하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액션이 아니었다. 이혜영은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감정과 기술의 경계에 서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민 감독에게 배운 것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올드한 방식의 연기를 했다. 제 마음대로 감정이 올라올 때까지 상대가 기다려준다거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장의 모든 연출이 다 봐준 거다. 늦게 나타나 현장을 바꾸고, 저 벽을 뜯어 카메라를 옮기라고 하기도 했다. 모두 '선배님이 저길 보신다잖아요'하며 다 맞춰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 감독을 만나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스태프 100명이 다 약속했는데 선배님 혼자 콘티 안 보고 나오면 안 된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파과'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