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앞 맑은 새암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1〉

1 week ago 2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 밑에
사로잡힌 넋 있어
언제나 먼 하늘만
내려다보고 계심 같아

별이 총총한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속에
편히 누운 넋 있어
이 밤 그 눈 반짝이고
그의 겉몸 부르심 같아

마당 앞
맑은 새암은 내 영혼의 얼굴

―김영랑(1903∼1950)


나는 ‘영랑’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좋아한다. ‘명랑’도 아니고 ‘영롱’도 아닌 이름이 아름다워서 그의 부모는 아들이 시인이 될 줄 알았나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김윤식이라는 본명이 따로 있었다. 다시 말해 윤식으로 태어난 한 인간이 스스로 이름을 찾았고 그 이름으로 남은 셈이다. 윤식과 영랑, 그 사이의 간극은 참 부럽다. 김윤식이 자신을 영랑이라 부르게 된 이유랄까 힘 같은 게 이 작품 안에 있다. 이 시의 주된 행위는 ‘들여다본다’이다. 마당 앞 샘을 본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기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처음 발표될 때에는 제목이 없었다. 김영랑은 애당초 시에 제목 같은 건 붙이지 않았다. 1935년의 ‘영랑 시집’을 보면 모든 제목 자리에 번호만 매겨져 있다. 거기서 이 작품은 50번으로 불렸다. 시에 제목이 없는 까닭은 모든 시의 제목이 ‘영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압축되었기 때문일까. 시인에게는 제목 찾기보다 영혼 찾기가 더 중요했나 보다.

영랑은 샘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는데 나는 오늘 무엇을 보았나. 고백하건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나의 영혼이 없다. 어딘가의 샘에 갇혀 있을 내 영혼에게 미안해진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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