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유성진]“대통령의 권력은 지시가 아니라 설득에서 나온다”

18 hours ago 1

입법-행정권력 장악해 협치 유인 적더라도
‘분열의 정치’ 끝내려면 정치 복원해야 해
野는 걸림돌 아냐, 정례회동으로 설득하고
SNS 말고 회견-담화로 소통하며 해법 찾길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정치학)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정치학)
예상치 못한 계엄과 탄핵으로 실시된 21대 대선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으나, 투표 결과 정파적 양극화가 지역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국론 분열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를 인식하듯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통합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핵심은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는 약속에 담겨 있다. 이 대통령은 실제로 취임 첫날 여야 대표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실천 의지를 보여 기대감을 높였다. 지난 6개월간 목도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의 해소가 사회의 중대한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통합을 위한 첫발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감안하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국민 통합과 협치를 약속했으나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어느 순간 독선적인 국정 운영으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새 정부는 강력한 입법 권력까지 장악하고 있어 협치의 유인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의 약속처럼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정치를 복원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균형 잡힌 당·정·대통령실 관계의 복원이다. 집권 초기에는 정책의 큰 틀을 입안하고 이를 신속히 궤도에 올려놓는 데 대통령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상시적인 국정 운영의 기제가 될 경우, 여당은 국정의 동반자가 아닌 거수기로 머무르고 행정부 역시 정책의 적극적인 기획자가 아니라 수동적인 운영자로 전락하게 된다. 과거의 경험은 대통령실 중심의 협소한 국정 운영이 결국 집단사고의 오류로 이어지고, 비합리적인 독선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따라서 수직적인 당정 관계를 청산하고, 정부와 여당이 국정 운영의 균형 잡힌 파트너로서 주요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통합과 협치로 가는 첫걸음이다.

둘째, 대통령의 국회와 야당에 대한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회와 야당은 대통령을 견제하는 기능을 보장받으며,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에 협의하고 관여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국회와 야당은 정책 실행의 걸림돌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으로 인식돼야 한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정례 회동, 국회에서의 정책 설명과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의 권력은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설득에서 나온다”고 말한 대통령 연구의 선구자 리처드 뉴스타트의 격언을 이 대통령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국정 운영 방향과 주요 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 있게 설명하는 소통 방식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정기적으로 대통령이 논란이 되는 현안에 대해 언론 인터뷰, 기자회견, 필요하다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의 개인적 불편함이나 의지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방식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최근에는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소셜미디어 중심의 소통이 선호되면서, 오히려 국론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주류 언론과 대국민 담화를 통해 현안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소통은 국민에게 협치와 포용의 통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보유한 가장 중요한 통치 자산이다. 이 대통령이 이러한 자산을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국민 통합의 중대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적한 현안을 앞둔 새 정부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조급함은 자칫 지지 기반에 호소하는 국정 운영으로 흐르기 쉽고, 이러한 선택은 국민 통합과 공동체 안정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임이 자명하다. 대화와 설득을 통한 협치, 그리고 국민 통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은 불확실성 속에서 신중함이 요구되는 현재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다원성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요체이기도 하다. 통합과 협치를 공언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한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앞서 제안한 방안들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청산하고 혐오의 시대를 넘어 국민 통합으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조치들이다. 부디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을 실천에 옮겨, ‘분열의 정치를 끝낸 유능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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