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외국인 구금 20개월까지”… 슬그머니 개정된 출입국관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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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무기한 구금 가능해 헌법불합치 결정
2년 만에 개정했지만 인권 제약 우려 여전해
‘인권선진국’ 되려면 국회가 다시 바로잡아야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모두가 탄핵과 내란을 말하는 사이, 몇 년 전 헌법재판소 결정과 관련된 법 개정안 하나가 국회를 통과했다. 외국인의 외국인보호소 구금을 정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3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을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이 조항은 우리나라에서 강제퇴거 대상이 된 외국인을 외국인보호소에 수용하되, 수용 기간을 정하지 않고 있었다. 강제퇴거 대상인 외국인이 한번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되면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가능했다.

한국에서 강제퇴거 결정을 받았는데 단지 여권이나 교통편 문제로 제때 출국하지 못하기만 해도 법적으로는 그 외국인을 출입국관리법의 ‘보호명령’이라는 미명하에 무한정 가둬 둘 수 있었다. 형사사건 피의자도 영장실질심사나 구속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고, 범죄 사실이 확정된 범죄자도 형기가 지나면 교도소에서 출소할 수 있다. 그런데 강제퇴거 대상자들은 보호명령을 받기 전에 의견을 제출할 수 없었다. 법원 같은 법무부 밖 중립적 기관의 판단을 받을 수도, 인신보호법상 구제 청구 절차를 밟을 수도 없었다. 다른 어떤 경우와 비교해 봐도 과도한 제한이었다.

설마하니, 우리나라가 추방하면 될 외국인을 일부러 무기한 가둬놓고 싶어하는 악의적인 반인권국가는 아닐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고속 성장하며 인구 순(純)유출국에서 순유입국으로 무척 빨리 전환됐다. 이제 유입 외국인이 유출 한국인보다 더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인을 외국에 내보내며 생기는 문제를 먼저 고민하다 보니, 한국에 들어와 제때 나가지 않는 외국인이라는 반대 방향의 문제는 치밀하게 고민하지 못했고, 그 결과 무기한 구금이 가능한 위헌적인 법이 만들어졌던 게 아닐까 싶다.

인권 이전에 국가 재정 문제만 따져 봐도, 장기간 시설 수용에는 나랏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외국인을 외국인보호소에 오래 가둬 두느니 신속히 한국에서 내보내는 편이 차라리 경제적이다.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며 입법부에 몇 가지 주문을 했다. 첫째로 구금 기간의 상한을 정할 것, 둘째로 구금 개시와 연장 단계에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기관이 통제할 것, 셋째로 보호명령 절차에서 당사자에게 의견 제출 기회를 부여할 것. 유럽연합(EU)은 구금 기간을 최소 6개월로 하되 최대 12개월로 제한하고, 대만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각각 최대 100일과 120일로 상한을 정해 두고 있다는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형사 절차상 피의자에 대한 체포나 구속도 법원이 판단한다는 비교 대상까지 결정문에 언급했다. 이 정도면 헌재가 입법 가이드라인을 다 잡아준 것이다.

그리고 2025년 2월 27일, 국회는 헌재 결정 후 2년여 만에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여야 갈등이 심한 시국에 재석의원 274명 중 자그마치 266명, 여야를 불문하고 절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찬성했다.그런데 그 ‘대찬성’한 개정안의 내용이 희한하다. 구금 기간 상한을 정하기는 했으나 3개월씩 총 9개월, 난민 신청자는 20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구금 가능 기간이 매우 길다. 이에 더해 재보호가 가능해, 보호 기간이 끝난 다음 재보호 명령으로 실제로는 무기한처럼 운영될 여지가 남았다. 난민 신청자만 특히 20개월까지 연장을 가능하게 예외도 뒀다. 난민협약 등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더 문제 되는 것은 통제기관이다. 독립기관이 아니라 법무부 내부 외국인보호위원회가 통제하도록 했다. 법무부 소속이 아닌 위원을 과반수로 하도록 했으나 법무부 안에 위원회 간판을 하나 더 단다고, 그들의 결정이 객관성이나 독립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이 문제투성이 개정안에 국회의원 대다수가 찬성했다. 이 시국에 여야가 한목소리를 낸 드문 사례라 할 만하다. 그러나 도무지 칭찬할 수가 없다. 헌재 결정의 취지를 거스르고 의미를 지웠다. 또 국회에 단 한 명의 대변자도 제대로 세울 수 없는 외국인의 인권을 제약하는 법안이다. 개정안 통과 후 논란이 제기되자 일부 야당 의원은 잘 몰라서 찬성했다는 취지의 사과문을 올렸다. 약자의 인권은 ‘잘 모르면’ 제한해도 용인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더 나아가 그 ‘외국인’의 자리에 우리 사회의 어떤 약자도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나라는 탄핵 후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을 수호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선진국으로 내딛던 걸음을 늦춰서는 안 된다. 이번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통과라는 ‘삐끗’을, 여야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한 공동의 지향을 가지고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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