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벽화에서 지식 네트워크까지… 사피엔스의 ‘기록 본능’이 만든 이 공간[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6 hours ago 1

기억과 예지의 저장소, 도서관

중세 유럽이 상상한 바벨탑(1563년 피터르 브뤼헐 작품).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중세 유럽이 상상한 바벨탑(1563년 피터르 브뤼헐 작품).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우리에게 도서관은 너무나 친숙한 공간이다. 책으로 둘러싸인 서가를 보기만 해도 심리적인 안정을 느끼며 마음이 차분해지곤 한다. 인류 역사에서 문자를 사용한 시간은 기껏해야 5000년 정도에 불과했다. 인류 역사의 99%는 문자가 없었던 시절인 셈이다. 그 시절 사람들은 책으로 가득한 서가 대신 암각화와 동굴벽화를 통해 자신을 기록했다. 텍스트가 이모티콘과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로 대체되고 있는 지금, 도서관의 역사와 그 미래를 고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암각화, 최초의 시각적 도서관

우리는 흔히 도서관을 책으로 가득 찬 건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도 도서관은 이미 존재했다. 사냥의 기억, 의례의 순간, 존재의 흔적을 동굴벽과 암벽에 남기며 동료와 후손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같은 구석기시대 동굴에서는 약 5만 년 전부터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다양한 시각적 자료로 남겼다.

이들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 저장소였다. 특히 빙하기 동안 사피엔스들은 많은 시간을 동굴 안에서 보내며 그곳을 자연스러운 기억의 공간으로 삼았다. 벽화는 사냥과 의례의 순간마다 참고하는 살아 있는 기록이었다. 어둡고 습한 동굴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재현한 장면들은 상징적 언어로 기능했다. 사냥터에서 돌아온 이들은 벽화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동굴의 컴컴한 벽 속에서 다양한 의식과 이야기를 통해 여러 경험을 나누던, 일종의 ‘도서관’ 같은 곳이었다.

빙하기가 끝난 뒤, 동굴 속 벽화의 전통은 암벽 위 암각화로 이어졌다. 구석기가 끝나는 시점,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괴베클리 같은 거대한 신전이 만들어졌던 시기인 1만2000년 전에 극동아시아에서는 강가의 바위에 그림을 새겨 넣었다.

대표적으로 아무르강(중국어로 헤이룽장)의 시카치-알리안 유적에서는 강을 따라 5∼6km에 걸쳐 450여 개의 이미지를 새겼다. 이 이미지들은 다양한 얼굴과 사냥 장면을 담고 있다. 여러 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며 수많은 지식을 공유했다. 최근에는 남미 대륙 콜롬비아의 세라니아 데 라 린도사에서도 12km에 이르는 거대한 암각화 벽이 발견됐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분야별로 책을 꽂아둔 서고를 찾아가듯,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암각화 벽을 찾아 그 숨겨진 의미를 배우고 지식을 전수했다.

콜롬비아 세라니아 데 라 린도사의 암각화 벽.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콜롬비아 세라니아 데 라 린도사의 암각화 벽.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암각화 전통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왜 인간은 그토록 고된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돌에 그림을 새겼을까.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잘 지워지지 않는 기록 수단에 남기려는 본능이 발현됐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도서관은 세상이 변하더라도 지식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로 삼는다. 수만 년에 걸친 사피엔스의 진화를 이끈 기록 본능을 공간화한 구조물이 바로 도서관이다.미래 빅데이터 담은 점괘 도서관

사피엔스의 기록 본능이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됐던 이유는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습성과 관련돼 있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별, 동물의 움직임, 뼈의 금을 읽으며 미래를 점쳤고,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도서관의 효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견된 설형문자. 사진 출처 영국박물관

도서관의 효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견된 설형문자. 사진 출처 영국박물관
점괘 아카이브는 또 다른 형태의 도서관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천문 관측, 내장 점, 꿈 해몽 등 다양한 점술 기록이 보관됐다. 아시리아 왕들은 정치·군사적 결정을 내릴 때 과거 점괘 사례를 검토했다. 히타이트, 바빌론, 아시리아 등 고대 근동을 다스린 여러 왕궁에서는 수천 장의 점괘 기록이 설형문자판으로 남아 있다. 얼핏 미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점괘는 단순한 주술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 도구였다. 왕들은 정책이나 군사작전을 앞두고 기존 점괘 기록을 검토했다. 이는 오늘날 빅데이터 기반 리스크 관리와 유사한 구조였다.

중국 상나라의 갑골문도 마찬가지다. 거북 등딱지와 견갑골에 점을 치고, 그 결과를 문자로 새겨 보관했다. 상나라 궁중에는 수천 점에 이르는 갑골문이 체계적으로 보관됐고, 왕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이 기록을 참조했다. 이는 과거 사례와 비교 분석하며 체계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고, 점차 국가 행정을 관장하는 데이터셋으로 발전했다.

바벨탑, 언어 오가던 지식의 허브

이러한 도서관의 역사는 언어 문제와도 깊이 연결된다.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는 인류의 언어 혼란을 상징한다. 하지만 실제 고고학이 전하는 바벨탑은 혼란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가 교차하며 정보가 모였던 상황을 증명한다.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의 중심에는 수천 년 전부터 ‘지구라트’라 불리는 계단형 신전이 세워졌다. 그중 바벨탑의 기원이 된 것은 바빌론의 중심에 세워진 에테멘앙키로, ‘하늘과 땅의 기초’라는 뜻이다. 특히 네부카드네자르 2세(기원전 605∼562년) 때 대대적으로 재건해 완성됐는데, 이름의 뜻처럼 상징적 건축물이었다. 당시 유대인은 ‘바빌론 유수’로 바빌론으로 끌려갔고, 그들의 상당수는 지구라트 건설에 동원됐다. 다양한 언어와 정보가 오가는 그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려 했고, 이 과정에서 바벨탑을 ‘혼란과 교만’의 상징으로 각색했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 지구라트라는 바벨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와 제국의 도서관적 기능을 품고 있었다. 바빌론 제국의 시파르-아룸 유적에서는 신전 안에서 3만5000점의 설형문자 점토판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중세 유럽의 수도원이나 불교 사원에서 장서를 보관하던 것과 같은 원리다. 또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던 학술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근동 문명의 중심지였던 바빌론 제국에는 수많은 언어와 문화가 모였고, 에테멘앙키 주변에서는 이 언어들이 교류되고 기록됐다. 혼란으로 묘사된 바벨탑의 모습은 사실 문화와 지식의 허브였던 당시 지구라트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AI 시대, 도서관의 미래는…

오늘날 AI 기술과 디지털화가 가속되면서 도서관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동 번역과 음성 인식 기술 덕분에 과거에는 넘기 힘들었던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도서관은 이제 물리적 공간을 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대한 지식 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인 조지 피보디 도서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인 조지 피보디 도서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도서관의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남긴 흔적과 의미를 존중하고 축적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언어와 문화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세대를 넘어 전해져 온 사고의 층위와 미묘한 뉘앙스, 고유한 표현의 깊이가 담겨 있다. AI 번역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모국어로 손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각 언어와 문화가 간직한 고유한 지식과 세계관을 더욱 존중하고 보존해야 한다.

인류는 언제나 미래를 예측하고, 경험을 기록하며, 그것을 후대에 남기고자 했다. 돌에 새긴 그림과 상징, 점괘로 남긴 예언들, 그리고 문자로 기록한 문헌들은 모두 불확실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 본능의 산물이었다. 그 기록들은 결국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모여 공동의 기억과 예지의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됐다. AI가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시대에도 인간의 기록 본능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도서관은 그 본능이 구체화된 공간으로 남아 있다. 활자와 텍스트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환경으로 전환되는 오늘, 사피엔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기록의 본능과 도서관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보는 의의가 여기에 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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