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실용의 첫걸음' 대한민국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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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이어진 지난 9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모습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모습. 온도가 높은 곳은 붉게, 낮은 곳은 푸르게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폭염이 이어진 지난 9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모습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모습. 온도가 높은 곳은 붉게, 낮은 곳은 푸르게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유례를 찾기 어려운 7월 초순의 폭염이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다. 폭염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전력예비율부터 확인하게 된다. 다행히 냉방 수요가 몰리는 최대 피크 시간대에도 전력예비율은 1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평소에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에너지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다.

우리는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에너지 섬'에 살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단순 정책 목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에너지를 경제안보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국제 정세와 자원 지정학, 공급망 불확실성 속에서 에너지정책은 산업정책의 뿌리이자 외교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근래의 에너지 정책은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 방향이 극단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탈원전'과 '친원전'이 정권의 구호가 되고, 석탄과 가스, 태양광, 풍력 등은 정치 도구처럼 다뤄졌다. 에너지 정책은 구호가 앞서는 선언형 프레임에 갇혔다. 탄소중립이라는 공동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정책 일관성과 신뢰성은 취약해졌다. 오죽하면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으로 일하게 됐겠나.

이제라도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현실에 기반한 실용주의 에너지믹스'가 제대로 자리잡아야 한다. 문제는 어떤 사람, 어떤 철학이 이를 주도하느냐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양 진영에는 여전히 이념과 감정에 좌우되는 극단주의자들이 존재한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정책을 정치화하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면 남는 것은 프레임 싸움뿐이다.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의 정치화를 끊어내는 첫 정부가 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초기 인선에서는 희망의 단서도 엿보인다. 에너지 연관 부처뿐만 아니라 대다수 장관 인선에서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실용성과 탕평 원칙이 반영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할 실무 라인에 기술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해석할 줄 아는 전문가와 추진력을 갖춘 실무형 인재를 대거 기용해야 한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현실을 냉철이 이해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인사가 새 정부 에너지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수치와 보고서가 중심이 되는 정무형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 이재명 정부가 이 전철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출범 초기부터 에너지와 산업, 환경 간 균형과 조화에 대한 철학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 스마트그리드 등 신산업은 모두 에너지 인프라와 직결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이 곧 산업정책이고, 청년정책이며 나아가 미래정책이다.

이제 진영의 에너지를 너머 실용의 에너지 정책으로 가야 한다.

기술 앞에 겸손하고, 현실 앞에 단단하며, 국민 앞에 정직한 정책만이 실용적인 에너지믹스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정책의 중심에서 '진영'을 지우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가장 우선적으로 작동해야 할 분야, 그것이 바로 에너지다.

양종석 기자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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