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집회-난리 계속 하는 건 에너지 낭비… 그런다고 헌재가 영향 받나”

1 month ago 7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밀알재단 설립자
“계엄, 국가와 국민에 손해이자 낭비… 보수도 진보도 시위는 마이너스 효과
성경은 사랑 없인 ‘헛것’이라는데… 지금 본질은 다 빼놓고 미움만 가득
전광훈, 본인 정치적 야심에… 하나님에 대해서도 참람한 발언
극단 집회에서 고개 숙이는 정치인… 본인에게 유리하지 않은 소탐대실”

4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만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밀알재단 설립자)는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극도로 분열된 사회에 대해 “진영 논리에 무조건 동의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라며 “결국에는 보수 진보 모두 스스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4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만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밀알재단 설립자)는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극도로 분열된 사회에 대해 “진영 논리에 무조건 동의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라며 “결국에는 보수 진보 모두 스스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저도 솔직하게 보수적인 면도 좀 있습니다만 아주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과 교회, 시민·복지단체를 통해 우리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 온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88)는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난입 폭력 사태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겁을 먹어서 ‘그 말 들어야겠네’라고 하겠나. 대통령 못지않은 미숙한 판단의 전형적인 예”라고 강조했다. 4일 손 교수가 초대 이사장을 지낸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최근 한국 기독교의 모습과 사회 분열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대통령 본인에게도 해가 되고, 나라에도 해가 되는 판단이었어요. 한마디 더 하고 싶은 건 대통령의 이번 잘못은 과거의 독재자와는 좀 질이 달라요. 박정희 대통령 같은 독재자들의 잘못은 자기가 권력을 더 오래 잡기 위해 저지른 비도덕적 오류들이었어요. 그런데 윤 대통령을 도덕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하긴 어려워요. 자기 권력이나 이익을 위해 계엄을 한 게 아니거든요. 카테고리가 달라요. 나름대로 판단을 해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계엄을 한 건데 일종의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게 차이예요.”

―계엄과 탄핵을 지나며 한국 사회가 극도로 분열됐습니다.

“계엄 선포가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그런 사건 아닙니까.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니까 계엄 선포에 대해서도 찬반이 있을 수 있고 집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자체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두 달이나 지나지 않았습니까. 법원 담장을 넘어가고(서울서부지법 난입 사건), 또 그런다고 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없고요. 지난번 두 번(노무현 박근혜)에 걸쳐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심판이 이뤄졌을 때 여당이고 야당이고 그걸 그대로 수용하고, 평화롭게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헌재의 권위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이제 탄핵 여부는 헌재에 맡기고 각자 생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집회와 난리를 계속하는 건 에너지 낭비일 뿐 아니라 경제에도 해를 끼쳐요. 보수의 시위는 오히려 대통령에게 불리한 효과를 가져오고, 진보도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2025년 한국은 어떻습니까.

“지금 분열은 절대 국가 존망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은 헌법과 경찰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법원이 제대로 재판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은 그 결과를 존중하고요. 다만 이번 사태로 국가와 국민이 손해를 많이 보는 거죠. 불필요한 낭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1970, 80년대 독재와 민주화 투쟁 당시, 독재와 반(反)독재의 상황, 그건 상당히 심각했지요.”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신학, 철학을 공부한 손 교수는 서울 영동교회에서 장로로 오랫동안 설교 사역을 했다. 1987년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1993년에는 밀알복지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요한일서 4장 20절의 구절을 외워 읊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이어 손 교수는 말했다.“성경은 사랑이 빠지면 다 헛것이라는데 요즘은 미움만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게 무슨 기독교입니까. 네 편, 내 편을 나눠 싸우고 욕하는 이들은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없어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랑인데, 기독교의 본질은 빼놓고 껍데기를 가지고 야단을 부르는 것 아닌가요? 저는 성경이 강조하는 사랑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유튜브 등이 극단적 주장의 확산을 부추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튜브를 일절 안 봐요. 최근 어떤 저명한 목사가 ‘우리 언론이 다 지금 엉터리가 돼 버렸는데 감사하게도 유튜브가 있어서 진실을 이렇게 찾아볼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대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유튜브야말로 분열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영상을 보다 보면 비슷한 내용의 영상이 자동으로 자꾸 떠요. 확증 편향이 심해지는 거죠. 그래서 일반적인 언론, 즉 방송과 신문에 근거해서 사안을 판단하라는 게 내 주장이에요. 그래도 언론사는 우리 사회의 견제와 감시를 받잖아요. 유튜브는 아무런 감시도 안 받고 자기 맘대로 떠들어요. 대부분의 유튜버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해요. 그들의 발언 뒤에 사실은 조회수 늘리기, 돈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고, 거기에 넘어가면 안 돼요.”

―지금 한국의 교회 공동체와 종교 지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화해에 앞장서는 게 지금 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주장을 하면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공격받습니다. 최근 한 목사가 ‘우리가 판단하지 말고 기도하자’는 말을 했다가 진보 쪽에서 욕을 먹고 있어요.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말해야지 무슨 판단을 보류하느냐’는 공격이 들어온 거예요. 하지만 이번 문제는 도덕과 비도덕, 윤리와 비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오류 문제인데 거기에 교회와 목사가 나서서 편을 든다면, 그게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과거 독재 정권 당시에는 목사님, 신부님들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는데….

“그때와는 시국이 달라요. 그때는 정의와 불의, 윤리와 비윤리의 문제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기독교가 나서서 한쪽 편을 들면 사람들이 혼동하기 쉬워요.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 윤리적으로 잘못한 것도 ‘나쁘다’고 하고, 판단을 잘못 내린 것도 ‘나쁘다’고 해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르거든요. 현재의 상황은 ‘잘못된 판단’을 내린 대통령을 둘러싸고 두 진영으로 나뉘어서 서로 상대방에게 ‘비도덕적이다 비윤리적이다’ 정죄(定罪)하는 상태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점점 보수화, 극우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건 사실이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보수로 기울고 있어요. 유럽도 그렇고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악몽이 아직 남아있고, 북한이라는 비인간적 비도덕적 세력이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단 말이에요. 6·25전쟁 때 순교자가 많았고 이게 아직 은연중에 작용해요. 여기에 더해, 진보 정부에서 추진한 사립학교법 개정,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문제에서 정부와 교회가 대립해서 교회의 보수화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어요. 미국은 낙태 이슈 때문에 교회와 진보 정부가 대립했어요. 저는 교회의 보수화 또는 진보화는 그 자체로 탓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다만 극단으로는 가지 말아야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집회에서 “윤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 등의 극단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헛웃음을 지으며)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건전한 상식조차도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전 목사의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가 좌우로 너무 갈라져서 사람들이 믿고 싶은 걸 믿는 겁니다. 자신이 속한 진영의 논리에 무조건 따라가려고 하는데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해요. 굉장히 위험하고 미숙한 겁니다. 흑백 논리, 카우보이 영화에 가깝죠. 옛날 카우보이 영화 보면 좋은 편과 나쁜 편, 딱 두 종류의 인간만 나옵니다. 실제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요. 늘 중간이 있어요. 성경에도 선악이 있지만 악에도 단계가 있고 선에도 ‘거룩의 단계’가 있어요.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기독교계에서 바라보는 전 목사는 어떻습니까.

“저는 목사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상당히 정치적인 야심도 있는 것 같아요. 기독교나 복음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아요. 적어도 우리에게 비치는 모습은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에서도 전 목사의 존재를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어요. 일부 교단은 전 목사를 이단으로 결정했습니다. 가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보자면 ‘참람(僭濫·분수를 넘어 도가 지나침)’하달까요. 그런 표현을 예사로 쓴단 말이에요.”

2021년 9월 대한예수장로회 고신(예장고신) 교단은 전 목사에 대해 “이단성이 있으므로 교류와 참여를 금지한다”고 결의했다. 전 목사의 “나를 보고 성령의 본체라 그래”,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일부 정치인이 연단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전 목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도 하는데….

“아주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이념적으로 동의해서일 수도 있고,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기독교인만 있습니까? 정치인 본인에게도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소탐대실이죠. 정치인은 종교적 편향을 굉장히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런 행동은 현명하지도 바람직하지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88)
△1937년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신학 석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 철학 박사
△1983∼2003년 서울대 사범대 사회교육과 교수
△1993∼2003년 밀알복지재단 설립 및 초대 이사장
△2004∼2008년 동덕여대 총장
△현 서울대 명예교수·고신대 석좌교수

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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