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정치와 과학은 분리돼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권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과학기술계는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도 과거 '원자력기술 홀대'를 지적하긴 했지만 대체로 과기계 지원과 동시에 불간섭 기조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다 큰 변화가 일었다. 2023년에 차년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사태가 빚어졌고, '과기 카르텔' 논란과 함께 정부 간섭도 심해졌다. 지난해 초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수여식에서는 R&D 예산 삭감을 비판한 이가 강제 퇴장당하는 '입틀막'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과기계도 바뀌었다. 정부 지원 축소, 간섭 강화에 입 무겁기로 유명한 과기인이 단체 정치 행동으로 응수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이후 상황은 잦아들었지만 근래 혼탁한 정치상황은 다시 과기계를 광장으로 소환했다.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여론 분열이 우리 과학기술 성장의 상징인 KAIST에서 재현됐다.
탄핵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재학생, 동문·관계자가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 KAIST 구성원이 정치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 이따금 있었지만 맞불 식의 갈등 표출은 매우 드문 일이다.
과기계가 시사에 함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라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자기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연구자들이 연구실을 나와 혼탁한 광장에 나서야 하는 상황은 안타깝다.
곧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온다. 결과가 어떻든 여파가 전국을 강타할 것이다. 과기계에도 어떤 영향이 있을지 예단하기 힘들다.
지금은 인공지능(AI)으로 촉발한 글로벌 기술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시기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그만큼 높다. 과기계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정치 격랑이 빠르게 안정되길 바랄 뿐이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